안산시 다문화마을특구는 하나의 마을로써 여러 국적의 이주민과 문화를 존중하는 점에 의미가 있다. 다만, 활성화되기엔 갈 길이 다소 멀게 느껴졌다. 실험실을 이끈 김태선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는 정의태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교수와 함께 2023년 봄, 안산 외국인주민지원본부의 ‘안산다문화마을특구 환경개선 및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지속적인 협력’협약을 계기로 구체적인 디자인 제안에 나섰다. 참여한 학생 모두가 공감한 문제의식은 다문화마을특구가 가진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가 전달되지 못하는 점이었다. 김종하 학생(대학원 산업디자인전공 24)은 리서치 과정에서 “다문화마을특구에 대해 내국인들과 안산시 원주민들은 ‘높은 범죄율’과 ‘불청결한 거리 환경’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고 말하며 “동시에 그 인식은 실제 모습보다 훨씬 과장되어 있었다”고 답했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다문화마을특구의 브랜딩 부재였습니다. 내국인들에게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가가기 위해 필수적인 지역 브랜딩이 부족했고, 방문객이 이 지역의 풍부한 문화적 콘텐츠를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 디자인 또한 거의 없었습니다. 다문화마을특구는 분명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가 잘 살아 있는 곳이었지만, 이러한 가치를 방문객이 체감하고 경험할 방법은 거의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홍진욱 학생(대학원 산업디자인전공 23)은 다문화마을특구의 위치가 단절감을 조성한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10차선 대형 도로가 주변 지역과의 연결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면서, 두 공간의 극심한 단절감을 조성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역에서 특구로의 접근이 불편할 뿐 아니라, 특구가 고립된 느낌을 주어 지역 활성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다문화마을특구의 환경 개선을 위해 학부 교과목 ‘UX디자인’과 대학원 교과목 ‘소셜디자인워크샵’, ‘커뮤니티 디자인’ 세 개 수업이 IC-PBL을 통해 참여했다. 다양한 관점을 반영해 프로젝트의 진정성을 높이고자 산업디자인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에 재학하는 외국인 학생들도 참여했다. 이로써 두 명의 교수자와 70명의 학부, 대학원생은 16주, 약 1만 시간 동안 문제해결을 위한 디자인을 모색했다. 고윤서 학생(대학원 산업디자인전공 20)은 지역 정체성을 강화하고, 방문객과 주민 모두가 공감하는 공공디자인을 구현하는 데 방점을 뒀다며 해결 방안을 모색했던 과정을 설명했다.
“다문화마을특구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시각적 요소가 부족하고, 공공 시설물 디자인에 통일성이 결여된 점도 개선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물리적, 환경적, 심리적 분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밝고 안전한 이미지를 조성하고, 지역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브랜딩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현장 반응도 매우 좋았다. 실험실은 16주에 걸친 디자인 해결책을 토대로 경기도 ‘더드림사업’에 선정됐고 행정안전부의 ‘로컬디자인사업’에서는 최우수 사업으로 선정되며 구체적인 실현 단계에 진입했다.
지역의 브랜딩과 환경 개선은
고유의 문화 가치를
경험하게 하는 도구
이번 프로젝트에 있어 안산의 원주민과 이주민, 행정 관계자와 디자이너는 각각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원 지역 주민은 지역의 전통적 정체성과 안전성을 우선시했지만, 이주민은 자기 모국에 대한 문화 정체성이 강하게 드러나길 기대했다. 행정관계자들은 실현 가능성과 유지 관리의 용이성을 중요시했고 디자이너들은 창의적이면서 시각적인 효과에 주안을 뒀다. 요구 사항이 다양한 만큼 프로젝트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조화’와 ‘공감’이다. 디자인으로 단판 승부를 볼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닌 만큼, 프로젝트 참여자들에게는 서로의 이해를 조율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도전적인 일이었을 터다. 참여자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며 다문화마을특구를 구성한 현장의 경험과 의견을 경청했다.
실제 이용자이자 특구 구성원을 중심으로 방향을 잡아가며 간극을 극복했다. 실험실을 주도한 김태선 교수는 실제 적용을 위한 마스터플랜 개발단계에서 수렴한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이주민의 본 국적을 고려하는 것, 향후 거주민의 변동, 문화적 정체성의 표현’을 고려하며 프로젝트 방향성을 정돈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국가별 문화 상징을 들여다보니, 시각적 유사성 즉, 문화 보편성 또는 인간 공통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의 국민으로 살고 있지만, 결국 우리 모두 ‘인류’임을 체험할 수 있었죠. 이에 특구는 시각적 정체성을 문화적 보편성으로 삼고 다양한 변화를 포용할 수 있는 단순한 추상적 형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안산시와 함께 픽토그램을 통한 특구 브랜딩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주민과 방문자의 휴식 공간과 셉티드(CPTED, 범죄예방 환경설계) 활성화를 중점으로 시각적인 통일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 나섰고 픽토그램과 로고를 개발해 사인물, 굿즈 등에 적용해 정체성을 강화하고 공감력을 높이는 길을 꾀했다. 홍진욱 학생은 특구에 대한 인식개선을 도모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덧붙여 설명했다.
“포토스팟을 통해 특구의 매력을 사진에 담아 SNS를 통해 자연스럽게 확산할 수 있도록 해, 다문화마을특구가 매력적이고 안전한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에 기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문화마을특구를 통해 ‘다양성’과 ‘공존’이라는 의미가 전달되는 것이다. 실험실이 개발한 픽토그램과 패턴을 표지판과 거리 설치물에 반영함으로써 일관된 경험을 제공하고, 넓은 다목적 공간을 조성해 공간 활용도를 개선했다. 특히 가장 큰 문제였던 쓰레기 배출, 거리 환경 개선을 위해 쓰레기 처리 공간을 마련하고 이용자를 위한 지표를 설치해 동선을 명확하게 보여줬다. 아름다운 이미지라는 기능적 디자인을 넘어 지역사회에 정말 필요한 변화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구체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변화에 이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관리 방책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김종하 학생은 “지역의 브랜딩과 환경개선은 지역 고유의 문화 가치를 드러내고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라고 말하며 “다양성과 공존이 꾸준히 체감될 수 있는 콘텐츠 개발로 지속 가능한 성장이 이뤄질 것”이라며 지역 활성화에 대한 바람을 말했다.
아직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다. 선정된 경기도 ‘더드림사업’과 행정안전부의 ‘로컬디자인사업’을 통해 학생들이 제시한 해결안을 현실적으로 수정하는, 시공을 위한 실시설계 단계에 있다. 아이디어가 다양했던 만큼 실현을 위한 다양한 협력이 이어질 예정이다. 학생들의 남다른 발상과 관심, 그리고 적극적인 의견이 지역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지켜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