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박태주 교수가 설립한 알페스가 수원 델타원 지식산업센터에 수원지사 및 시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센터를 설립해 양산화의 꿈에 한발 다가섰다. 2022년 1월 한양대 ERICA 나노소자공학연구실에서 실험실 창업기업으로 시작했으니 약 2년 만에 이룩한 성과다. 박태주 교수는 반도체 소자와 공정을 연구하는데, 반도체 공정 중에서도 원자층 증착법이라는 박막 증착 공정을 연구하고 있다. 이는 반도체소자를 집적하는 데 필수적인 공정이다.
“원자층 증착법이란 반도체 공정에서 실리콘 웨이퍼 상에 박막을 형성하는 공정 기술입니다. 이 기술을 분말에 응용해 지난 14년간 나노 단위로 정밀하게 두께를 제어할 수 있는 분말 원자층 코팅법이라는 기반 기술을 구축했습니다. 이는 독창적이면서도 기술 진입장벽이 높은 고유의 기술입니다. 기술의 응용처 또한 매우 다양합니다.”
분말 형태의 소재는 반도체, 이차전지, 제약, 화장품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사용되는데 변질을 막거나 다양한 기능성을 부여하기 위해 코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는 약품에 담그거나 스프레이를 뿌리는 등 습식 공정을 이용했다. 그러다 보니 액체를 건조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 엉겨 붙지 않도록 분리하는 등 번거로운 전처리 및 후처리 과정이 필요했다. 또한 폐수 발생 및 환경 부담이 커지는 문제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균일한 품질을 얻기 어려워 대량 생산에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기체 분자를 분말의 표면에 흡착시켜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코팅막을 형성하는 분말 원자층 코팅법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특히 이차전지, 반도체처럼 정밀성이 요구되는 공정에 유용하게 쓰일 것입니다. 수년 내로 황화물 전고체전지가 양산화될 전망인데, 이차전지의 활물질분말 소재에 나노미터(㎚)급 기능성 코팅을 적용해 배터리의 수명과 안정성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습식 코팅법으로는 양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따라서 공정 신뢰성 및 양산성이 크게 개선된 분말 원자층 코팅법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반도체 패키징 공정에 쓰이는 다양한 분말 형태의 소재 특성을 개선하는 데도 쓰일 수 있습니다. 그 밖에 제약 및 화장품 소재에도 활용이 가능합니다.”
차세대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새로운 시도 필요
지금이야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양산화되기만을 기다리는 신기술로 주목받고 있지만, 10여 년 전 박태주 교수가 처음 이 기술을 개발했을 때만 해도 시장과 학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반도체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 분야에나 쓰일 기술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러한 분위기에서는 기업체에 기술이전을 한다 해도 실제 시장에 나와 활용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박태주 교수는 묵묵히 연구를 진전시키는 한편, 직접 창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독창적이고 낯선 기술이었기 때문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습니다. 대학 연구실에서 10여 년간 다양한 산업체와 협업 연구를 통해 기술을 축적한 후 실험실 창업을 해 기초연구를 마무리하고 양산화 기술에 도전했습니다. 공대 교수가 직접 개발한 기술을 온전히 상용화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큰 영예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학생들에게 연구 성과가 제품 개발 및 생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어 살아있는 공학 교육의 실례를 제공한다는 의무감이 있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기초연구와 상용화의 선순환 실현을 기업 경영의 철학으로 삼고 있습니다.”
창업 후 2022년 8월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협력해 이차전지용 활물질 분말 소재 표면 코팅 과제를 수행하고, 같은 해 9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지원하는 실험실 특화 초기창업패키지 과제를, 11월에는 현대자동차 중앙연구소와 협력 연구를 통해 전고체전지용 원자층 코팅 공정의 양산화 연구개발을 추진하는 등 알페스는 꾸준히 기술 혁신을 이룩해 왔다. 2023년 3월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한 후 R&D 투자를 더욱 강화한 후에는 같은 해 4월 경기창조경제센터로부터 3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하고, 6월에는 벤처기업인증을 획득했으며, 7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딥테크팁스(R&D) 과제를 수주해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또한 9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성장기술개발사업(전략형_실험실창업기업)에 선정되는가 하면, 연달아 4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최근 알페스와 유사한 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한 업체가 한국 기업을 비롯해 1천억 원에 가까운 투자를 받았는데, 이는 분말 원자층 코팅 기술 상용화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이에 알페스의 기업 가치 또한 상승했다. 그 결과 2024년 상반기에 40억 원 시리즈 A 투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했다.
“자사가 국내 최초로 양산형 분말 원자층 코팅 설비를 구축해 양산화를 추진하고 있음에도 국내 업체들은 미국의 경쟁업체에 더 관심을 보이는 실정입니다. 아직 기술 사대주의의 잔재가 있는 것이죠. 이러한 상황들이 개선돼 국내의 많은 독창적인 기술들이 상용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쉬운 상황 속에서도 박태주 교수는 국내 등록 특허 1건 및 출원 특허 10건과 미국 출원 특허 3건을 획득하는 등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그리고 누적 47억 원의 투자액을 유치해 2024년 상반기에 CFO, 기술 영업 임원, 사내 변리사를 영입해 수원지사를 설립했다. 수원지사는 CMP 슬러리, 솔더볼, 방열 소재 등 수도권 중심 사업화를 위한 전초기지인 셈이다. 또한 전고체전지 활물질 코팅 소재 사업화를 목표로 배터리 연구 인프라의 중심인 오창에도 지사를 설립했다.
“차세대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가 필요합니다. 원자층 증착(코팅) 기술은 기존 반도체 분야에서는 이미 양산에 적용되고 있는 기술이지만, 분말 소재 코팅에 응용하는 것은 가능성만 확인됐을 뿐 실질적인 양산 스케일에서의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었습니다. 분말 원자층 코팅 기술은 코어쉘 구조 분말 합성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기반 기술로서 그 응용 범위가 매우 방대합니다. 현재 산업적으로 개발이 시급한 반도체 후공정용 분말 소재 및 하이엔드 이차전지 활물질의 개발과 양산을 시작으로 분말 소재 코팅 분야의 지속적인 연구개발 및 수요를 창출하겠습니다.”
현재 반도체 및 이차전지 소부장 기업 10여 업체들과 PoC(기술실증)를 수행하고 삼성물산과 상권계약을 체결한 알페스는 2025년 하반기에는 본격적인 대량 생산을 위해 안산에 제조 공장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머지않아 첫 양산화 성공 소식이 전해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