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성 디자인대학 교수와 홍지영 학연산클러스터교육팀 교수가 특별한 교양수업을 진행했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첨단분야 혁신융합대학사업을 통해 설강한 ‘Chat GPT(이하 GPT)로 만난 미래 이야기’가 바로 그 수업이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4개월 동안 GPT와 대화하며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의 협력과 공존을 주제로 단편소설을 집필했다.
AI의 발전으로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는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 정교한 지능과 창의성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군가는 AI가 상상조차 어려운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라고 믿는다. GPT의 등장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듯 말이다. 더 나아가 인간과 AI가 공존하는 미래를 모색하는 것이 시대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홍지영 교수가 이번 강의를 개설한 이유도 이러한 배경과 맞닿아 있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창의성까지 도전받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학생들의 창의력을 GPT라는 첨단 도구와 결합해 협력과 균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강의를 기획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위대한 능력에 대한 자긍심을 다지는 것도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홍 교수의 말처럼 이러한 화두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수업에 모였다. 김시온 문화인류학과 학생은 자신의 전공이 이번 교양수업의 목적과 닮아있음을 느껴 수강했다고 전했다.
“GPT를 이용해 미래를 구상한다는 점이 제 전공인 문화인류학에서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를 내다본다는 점과 닮아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전공에선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 사이에서 현재와 미래 세대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다루는데, 소설에 이러한 부분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직접 소설의 창작자로 참여한 학생들에게 소설에 대한 설명을 들어봤다. 먼저 서영빈 산업디자인학과 학생은 소설‘이기적 자유의지’를 통해 AI로봇이 삶을 걱정하고 사유하는 모습을 담았다. 더불어 가까운 미래에 이들이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소설의 내용은 독자에게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 회사에서 인간의 롤모델이 되는 AI로봇을 제작합니다. 연구원들은 자유의지를 가진 AI로봇 소일라에게 ‘인간이 되고 싶은 욕구’를 프로그래밍합니다. 소일라는 거울 앞에서 표정도 연습해 보고, 인간의 학문도 공부하며 본인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죠. 그러나 사실 본인은 프로그래밍이 된 존재이며, 어떻게 태어났는지 깨닫게 되면서 고민에 빠지는 스토리입니다.”
프롤로그 집필에도 참여했던 김시온 학생은 ‘Over the rainbow’라는 희망적인 제목의 소설을 지었다. 디스토피아 배경의 이번 소설에선 인류를 위해 만들어진 AI가 존재 가치와 목표에 대해 고민한다.
“전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아이리스라는 로봇이 인간을 도와 백신을 만든다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자아를 가진 로봇 아이리스는 약물 개발이 성공적이지 못했을 때 겪게 될 비난을 걱정하고, 한편으론 성공적으로 개발했을 때 자신의 쓸모는 무엇일지 사색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이승준 기계공학과 학생이 작성한 ‘루미나 : 종말 속에서 피어난 빛’은 시온 학생과 마찬가지로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했다.
“지구가 방사능에 오염된 세상에서 ‘마더’라는 이름의 AI에 의존해 인류가 생존하는 내용입니다. 마더의 제1원칙은 인류의 생존인데, 의미가 변질돼 인류를 진화시키기 위해 생체 실험까지 강행하는 설정입니다. 지구를 원래 상태로 돌려놓으려는 주인공과 마더의 보조 로봇 루미나가 만나 감정을 배우고 마더에 대항하는 이야기입니다.”
소설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떠올리는 미래에서, AI 로봇이 자아를 갖는 것은 이미 정해진 사실처럼 여겨진다. 대학생 작가들은 이들이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인공지능과 인간 지능의 장벽이 무너진 세계에서 인간으로서의 고유성과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도록 만든다. 홍지영 교수는 소설에 대해 “학생들이 개인의 상상력을 구체화하는 동시에, GPT와의 협업 과정에서 표현의 절제와 적절한 구조를 만들어가는 능력, 즉 균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소설 집필을 위해 4개월간 GPT와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일부 비평가는 아직 GPT가 통계적 확률과 데이터 기반 예측의 결과라 주장하며 패턴과 알고리즘에 의존할 뿐 진정한 창의성은 없다고 말한다. 반대편에선 창의성을 강화하고 향상시키는 존재로 공동의 스토리텔러라고 표현하며 작가의 장벽을 극복하고 영감을 제공하는 창조적 존재임을 강조한다. 서영빈 학생은 두 입장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설명했다.
“저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GPT의 창의성이 높다는 데에 먼저 무력감을 느꼈고, 이후 약간의 희망을 느꼈습니다. 무언가를 디자인할 때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GPT와 대화할 때 소재가 빠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제가 놓쳤던 부분을 쉽게 떠올리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죠. 창의력이 부족한 순간에 GPT를 찾게 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승준 학생은 첫 GPT 사용엔 어려움을 겪었지만, 점차 적응해 나갔다고 말하면서 인공지능을 활용함에 따라 효율과 능률을 꾀했다고 말했다.
“GPT를 이용할 때 거의 서른 개의 채팅방을 만들어 각기 다른 용도로 이용했습니다. 중간중간 에피소드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어 스토리를 전개했죠. 그 외에도 인물들 대화를 노인, 어린아이 같은 콘셉트에 맞춰 쓰는 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처음과 마지막 에피소드는 제가 대부분 제작하고, GPT가 하루 정도 걸려 나머지 부분을 완성했는데, 빠른 제작 속도가 제일 놀라웠습니다. AI의 효율성을 통해 제가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 ‘GPT로 만난 미래 이야기’ 수업은 현재의 AI 기술 활용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사유하는 기회였다. 김시온 학생은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에 대해 어디에서도 해보지 못한 특별한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종이 등장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AI가 자아를 갖는다면 과연 인간을 위한 도구로만 존재할지 의문입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분야를 다루게 될 줄 몰랐습니다. 암기 위주의 공부와는 다르게 제가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책도 써볼 수 있어 즐거운 수업이었습니다.”
이승준 학생은 “인간의 욕구에 의해 AI는 언젠가 믿음과 욕구를 가지게 될 거라 생각한다”면서 “수업을 들으며 이 분야에 대해 많이 공부할 수 있었고, 대학 생활 4년 동안, 이 수업보다 특별했던 수업은 없는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소설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은 기계공학과, 문화인류학과, 산업디자인학과 등 서로 다른 전공생들이 모여 집필했기에 AI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담을 수 있었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게 될 학생들이 기술과의 협력과 균형의 중요성을 되새기며 이번 수업을 기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