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파 적외선 카메라는 연기 또는 짙은 안개가 낀 악천후, 컴컴한 야간에도 시야 확보가 가능하다. 정교한 사물을 포착하거나 밤하늘의 별을 관측하는 일, 이 외에도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하부의 얼굴 인식을 이용한 잠금 해제에도 적용되는 기술이라 산업적 가치가 매우 높다. 기존에는 카메라의 고화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화합물 반도체 중 하나인 Ⅲ-Ⅴ족 기반의 반도체(InGaAs)를 활용해 왔다. 기존의 실리콘 반도체보다 전자 이동도가 높고 전력 소비가 낮다는 장점이 있어 단파 적외선의 핵심 소재로 도입되었으나, Ⅲ-Ⅴ족 반도체 물질의 제조 공정 단가가 매우 높다는 게 큰 단점이었다. 단파 적외선 카메라가 수천만 원 이상을 호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 때문에 방위산업, 우주개발과 같은 특수 분야에 한정적으로 도입되어 왔다.
이러한 소재 및 공정 단가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실리콘 웨이퍼 상에 양자점을 집적해 단파 적외선을 검출하는 기술이 도입됐다. 다만, 이 역시도 안정성과 균일성에 있어 열악한 잡음성능의 문제를 보여 고화질 구현에는 한계를 나타냈다. 이지원 교수는 실리콘 웨이퍼에 산화물 반도체(InGaZnO)를 집적한 포토게이트를 고안했고, 이미지 센서 화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전압 고정형 수광 다이오드(PPD) 기반의 이미지 센서’를 세계 최초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양자점 단파 적외선의 문제였던 암부 잡음은 효과적으로 개선하고 공정 단가를 낮추어 고화질을 구현할 수 있어 획기적이다. 이지원 교수는 “고가의 반도체 물질과 공정이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고화질을 구현하는 것이 장점”이라며 말하면서“낮은 가격으로 양산이 가능한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해 경쟁력과 차별성을 덧붙였다.
시장가치가 높은 만큼 상용화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이지원 교수는 이를 위한 후속 연구에 이미 착수한 상태다. 이미지 센서는 매우 민감하고 섬세한 반도체 칩인 만큼 궁극의 최적화 작업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벨기에 현지 연구진과 함께 신기술의 적용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단계를 거쳐나가는 중이다. 본격적인 상용화를 위해서는 시장 역시 이러한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지원 교수는 향후 5년 내 4조 원 이상의 시장 확보를 예상하고 있다.
한국의 이미지 센서 기술이 세계 1위가 되도록
다양한 연구 펼치고, 훌륭한 인재 양성할 것
대학에 오기 전 이지원 교수는 삼성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다 벨기에 반도체 연구소인 IMEC으로 이직했다. 당시 이 교수가 맡은 프로젝트가 바로 양자점 기반의 단파 적외선 카메라 개발이었다. 이 교수는 당시 양자점 기반의 단파 적외선 카메라 기술을 높은 수준으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화질 개선의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이지원 교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IMEC의 연구소를 통해 다양한 기술을 접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기술이라는 게 사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워가며 다른 기술을 접할 수 있는 개방성이 필요한데요. 운이 좋게도 저는 IMEC의 개방적인 선진 연구소를 통해 높은 수준의 기술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기술과 연구를 접하는 과정에서 단파 적외선 화질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를 고안할 수 있었고,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어도 이를 완성도 있게 구현해 내는 것은 또 다른 어려움이었다. 어느 수준까지는 자력으로 연구를 끌어올 수 있었지만, 이후에는 연구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관건이었다. 이지원 교수는 인력 구성부터 시작해 다국적 연구진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기 위한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연구 환경 구축을 위해선 펀딩이 매우 중요했다. 이 교수는 연구 지원을 받기 위해 IMEC의 CEO인 루크 반 덴 호브(Luc Van den hove)를 상대로 한 프레젠테이션을 기회를 얻어냈고, 마침내 투자를 받아 개발을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A부터 Z까지 직접 발로 뛰어 만들어야 했던 성과. 이 연구는 전자 분야 세계 최고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일렉트로닉스(Nature Electronics)』 8월호에 게재되며 그 성과를 가시화했다. 아이디어 고안에서부터 최종 구현에 이르기까지 3년, 논문을 출판하는데 1년이 추가로 걸렸으니 총 4년의 세월이 소요됐다.
이지원 교수는 기업체에서 축적한 두터운 경험을 바탕으로 차세대 이미지 센서 설계에 포커싱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스마트폰 기능 중에서도 카메라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더욱 많은 카메라와 이미지 센서가 도입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미지 프로세싱 기술의 발전으로 이미지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됨에 따라 다양한 응용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죠. 이에 따라 현재는 더 효율적인 정보의 획득을 위한 이미지 센서의 개발을 목표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12개의 해외 특허와 7개의 국내 특허. 『네이처 일렉트로닉스』 논문 포함한 12개의 SCI 논문을 발표한 이지원 교수. 그가 ERICA에 부임한 지도 이제 막 일 년이 지난 참이다. IMEC의 개방적이고 선진화된 연구 기회가 있음에도 대학 연구실을 선택한 것은 그로서도 큰 용기다. 이른 나이에 남들보다 빠른 진급과 성과를 달성한 그는 스스로 다음 단계를 설정해야 했고, 안정된 직장과 여유 대신 대학에 발을 딛었다. 글로벌 기업 연구소에 비하면 모든 것을 새로 쌓아야 하는 환경. 지난 일 년은 이 교수에게 그야말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배우고자 하는 나노광전자학과의 분위기, 하나씩 채워가며 성장하는 연구실은 교수로서 느낄 수 있었던 보람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제 IMEC의 객원 교수이자 ERICA의 교수로서 파트너십을 바탕에 둔 공동연구 수행, 학생들의 국제 연구 교류를 위한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칩 하나를 설계하더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여러 가지 요소가 융합될수록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IMEC과의 연구 네트워킹은 우리 학생들에게도 IMEC 연구소에도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교수는 방학 동안 가족들과 벨기에에 체류하며 연구 수행에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이번 겨울에는 나노광전자학과 학생을 데리고 벨기에로 향할 계획이라고. 채 1년이 되지 않은 신생 연구실임에도 열 명이 넘는 대학원생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들에게 보다 나은 연구 환경을 제공하고 더 많은 기회와 경험을 안겨주어야 한다는 남다른 부담. 그만큼 이 교수의 포부도 남다르다.
“이미지 센서 분야에서 한국은 오랜 시간 일본에 밀려 만년 2위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이미지 센서 기술이 세계 1위가 되도록 다양한 연구를 펼치고,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