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 동문이 ERICA 로봇공학과에 입학했던 2016년. 기억하는 사람은 누구나 알 듯 그야말로 코딩이 대세였다. 강기훈 동문도 한때 이러한 로봇 소프트웨어 개발자 열풍에 편승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어렸을 때부터 로봇이 너무 좋았고, 학창 시절 내내 로봇 엔지니어의 꿈을 저버린 적이 없었어요. 제가 입학했던 당시엔 코딩이나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스펙을 가지고 있으면 더 쉽게 취업이 된다는 것이 만연했기 때문에 저 역시 그에 맞춰 준비했던 것 같아요.”
하드웨어를 구성하려면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기능하는 설계가 필요한데, 휴머노이드 로봇 하드웨어는 한 차원 더 정교하고 난도가 높아진다. 소프트웨어에 열중했던 것은 로봇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방점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도 당시 시장을 휩쓸던 소프트웨어 중심의 트렌드를 따른 선택이었던 셈이다. 그런 그가 휴머노이드 기구설계 연구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4학년 졸업을 앞둔 캡스톤 디자인에서 한재권 교수의 피드백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교수님이 설계 피드백하시면서 직육면체 케이스를 보여주시고는 ‘이게 직각으로 이루어진 것 같지? 사실 아니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실제 제품을 양산할 때 고려해야 하는 미세한 경사(구배)의 개념을 터득하게 해주신 계기였죠. 그 한마디 이후, 놀랍게도 사물을 바라보는 제 시선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계산된 컴퓨터 안의 세계와 달리, 현실의 물리 세계는 재료의 특성부터 가공 방식까지 고려해야 할 변수투성이였다. 일상의 평범한 물건들조차 수많은 엔지니어링의 고민을 거쳐 탄생했다는 사실을 체감한 순간, 그는 코딩과는 또 다른 차원의 복합적인 매력을 가진 하드웨어 설계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강기훈 동문은 에이로봇 기구설계팀장으로 재직하며 인간의 근육과 같은 리니어 액추에이터를 설계, 링크 구조와 관절 메커니즘 구현을 개발한다.
강기훈 동문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의 형태를 가진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환경이 ‘인간’에게 가장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로봇을 위해 인간의 삶과 인프라를 뜯어고치는 것보다 인간의 인프라에 가장 최적화된 존재를 개발하는 게 효율적이다. 이를 위한 유연성과 물리적 성능을 확보하는 것이 휴머노이드 연구의 방점이고, 실패율을 단 1%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 곧 휴머노이드로서 역할을 확보하는 길이다.
석사 졸업 후 강기훈 동문은 현재 에이로봇 기구설계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에이로봇의 대표 모델인 앨리스의 기구설계를 담당하면서 로봇이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말하자면 인간의 근육과 같은 리니어 액추에이터를 설계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링크 구조와 관절 메커니즘을 구현한다. 어떠한 가혹한 환경에서도 기구적 결함 없이 강인한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제어와 AI 소프트웨어와의 결합을 이루는 것을 추구한다. 이 밖에도 전장팀, 프레임워크팀, 제어팀 등 다양한 분야의 팀과 협업하며 로봇의 물리적 시스템 구성을 총괄한다. 에이로봇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로봇 연구가 오랜 시간 이뤄져 왔지만, 빛을 보지 못했고 상용화 가능성도 멀게만 보였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급물살을 통해 휴머노이드에 대한 시장의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졌음을 강기훈 동문도 느끼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앞다투어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에이로봇은 연구실에만 머무는 로봇이 아닌 실제 산업에 투입 가능한 플랫폼을 완성하기 위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디테일을 다잡아가고 있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단 1%의 실패율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실험실에서의 99% 성공률이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실제 제조 공정이나 물류 현장에서의 1%실패는 전체 공정을 마비시키고 기업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개발자가 생각하는 기술의 화려함과 현장 관리자가 요구하는 ‘신뢰성’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상용화의 첫 단추였습니다.”
에이로봇이 가혹한 변수가 도사리는 실제 작업 환경을 고려해 다각도로 실증 사업을 전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섣부른 적용 대신 현장에서 안심하고 도입할 수 있는 영역부터 단계적으로 접근하며 실제 구동 데이터와 피드백을 축적하는 유기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인간이나 로봇이나, 신뢰를 얻기란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는 법.
“결국에는 적용 분야를 조금씩 확장할 수밖에 없어요. 정형화된 공장 라인부터 일상적인 서비스 영역까지 하나씩 시도하면서 현장 데이터를 축적해 가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매년 세계적인 로봇축구 경진대회인 ‘로보컵(RoboCup)’에 출전하며 다져온 에이로봇만의 독보적인 휴머노이드 제어기술과 노하우입니다.”
에이로봇의 기술 경쟁력은 단연 원천 기술의 내재화와 실용성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핵심인 액추에이터부터 관절 메커니즘에 이르기까지 하드웨어 전반을 자체 제작할 뿐 아니라, 이를 최적화할 수 있는 기구 설계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현장의 열악한 환경과 변수들을 고려한 실증 사업을 다각도로 전개하면서 현장 데이터와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기술 개선에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유기적이고 실천적인 시스템에 글로벌 기업도 반응했다. 엔비디아가 한국 기업 중 가장 먼저 노크한 기업도 바로 에이로봇이다.
“엔비디아 코리아도 인공지능을 적용할 휴머노이드 하드웨어 플랫폼이 필요했던 만큼, 저희와도 휴머노이드를 어느 산업에 대입할지 토의해 왔어요. 휴머노이드를 통해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을 돕는 일, 산업 현장 투입에 관해 계획을 공유했고, 이러한 계획에 뜻이 맞아 엔비디아 인셉션 프로젝트에 꾸준히 참가했습니다.”
젠슨 황의 기조연설 이후 에이로봇은 한동안 수많은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영광이 있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실패도 있었을 터다. 강기훈 동문은 “로봇 개발은 수많은 실패의 연속”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전방위로 부딪히는 집요함, 근성도 놓치지 않는다. 강기훈 동문의 연구 목표는 ‘신뢰성’에 있기 때문이다.
“저는 기구설계자로서 하드웨어적으로 완벽한 내구성과 효율성을 갖춘 메커니즘을 구현해 내고자 합니다. 100%에 수렴하는 신뢰성을 가진 휴머노이드를 개발하여, 기업이 안심하고 현장에 도입할 수 있는 글로벌 표준 플랫폼을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것에 대해 우려의 시선도 있다. 하지만 그 로봇을 개발하는 주체도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을 위한 로봇을 개발한다. 강기훈 동문의 손에서 개발된 가장 완벽한 조력자, 휴머노이드를 기대해 본다.
2024년 11월 프랑스 낭시에서 개최된 Humanoids 2024 학회에 참가하여 앨리스 4를 처음 선보인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