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로봇은 제2의 스마트폰이 될 것입니다. 이제 스마트폰 없이 사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게 된 것처럼 요즘 아이들은 머지않아 ‘옛날에는 로봇 없이 어떻게 살았어요?’라는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한재권 로봇공학과 교수가 바라보는 미래는 이렇게 가정마다 휴머노이드 로봇 한 대쯤은 보유하고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각종 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이러한 전망이 그렇게 먼 미래의 일이 아닐 것이라는 분석이다. 모건스탠리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자율주행차보다 더 빠르게 도입될 것이며, 개인 간호, 경호 서비스 등 개인 및 가정용 목적의 로봇이 빠르면 2028년에 도입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로봇은 용도에 따라 크게 제조용 로봇과 서비스 로봇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공장에서 쓰이는 제조용 로봇이나 서빙, 안내 로봇 같은 일반 서비스 로봇은 이미 많이 보급돼 있다. 이에 반해 인간의 신체 형태를 본뜬 휴머노이드 로봇은 다목적용이지만 아직 양산화되지 않았다. 그동안 보여주기식으로 깜짝 등장해 관심을 유발한 적은 있으나 상용화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2000년에 일본의 혼다에서 세계 최초로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를 선보였습니다. 로봇이 두 발로 저벅저벅 걷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열광했죠. 하지만 휴머노이드 로봇은 기술집약적이며 가장 높은 수준의 로봇이기 때문에 기술 장벽과 시장 가격이 걸림돌로 작용해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상용화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24년 들어 기술의 진보와 단가 하락에 가속이 붙었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상용화에 불을 지핀 것은 다름 아닌 생성형 AI다.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휴머노이드 로봇의 강점인데 그동안은 작업 내용을 일일이 프로그래밍해야 했다. 그래서 상상 속의 ‘알아서 척척’ 로봇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은 요원한 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생성형 AI가 급성장하면서 휴머노이드 로봇의 상용화에 희망이 생겼다. 생성형 AI를 장착하면 스스로 학습하면서 판단해 인간처럼 다양한 상황과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21년에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에 강한 의지를 표출하면서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시장의 관심을 증폭시켰습니다. 2022년부터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를 선보이고 있는데 현재 3세대까지 내놓은 상태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당장 내년부터 1천 대가 넘는 로봇을 테슬라 공장에 투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테슬라뿐만이 아니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와 마이크로 소프트, 엔비디아, 오픈AI도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피규어AI’에 투자하는 등 트럼프 2기의 ‘넥스트 빅테크’로 꼽히는 로봇 산업계의 동정이 심상치 않다.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경제 안보에 영향력을 미치는 산업을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해 운영하는데, 이르면 연내에 로봇 산업을 추가 지정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말에는 ERICA 창업보육센터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는 ‘에이로봇’이 ‘앨리스(Alice)’ 4세대 버전의 시연회를 열었는데 산업통상자원부 박성택 1차관을 비롯해 기관 및 투자사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에이로봇은 한재권 교수 연구실에서 2018년 스핀오프한 기업으로 현재 한재권 교수가 CTO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창업 6년 만에 35억 원의 시드 라운드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지난 20년간 휴머노이드 로봇만 연구했는데 올해와 같은 반응은 처음입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죠. 그동안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았는데 올해는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하는 등 산업계 관심이 높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학계보다 기업체에서 연구를 서두르는 것도 이례적인 현상입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연구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에이로봇의 앨리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로봇 대회인 로보컵 대회의 휴머노이드 리그에 매년 출전해 출중한 기량을 펼치고 있다. 2022년, 2023년 연속으로 준우승을 차지하고, 2024년에는 3위를 했으나 특정 과제를 수행하는 기술도전대회(테크니컬 챌린지)에서 우승했다.
“로보컵 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AI와 운동성의 두 가지 연구 수준을 모두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로봇이 축구를 잘하는 것은 작업 수행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에이로봇의 앨리스가 전 세계 최고의 휴머노이드 로봇과 겨뤄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글로벌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사실 글로벌 시장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양산할 수 있는 국가는 많지 않다.
“현재 미국이 앞서나가고 중국이 그 뒤를 바짝 뒤쫓는 상황입니다. 기존 산업을 파괴하고 새로운 혁신을 불러온 스마트폰처럼 다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미칠 파급력은 굉장할 것입니다. 또 한 번 세상이 바뀌는 것이죠. 그래서 다들 긴장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기술 패권에서 밀리면 안 되는데 국내에는 저희 연구팀밖에 없어 국가대표라는 생각으로 사명감을 갖고 연구에 임하고 있습니다.”
최신 버전인 4세대 앨리스를 선보인 에이로봇은 2025년에는 앨리스가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래서 개발 인력을 확충하며 한창 개발 속도를 높이는 중이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 줄 것을 당부하는 한재권 교수.
“청년들이 앞으로의 세상을 이끌어야 합니다. 인터넷이 출시됐을 때, 그리고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왔을 때 그 변화를 포착해 주도했던 사람들이 지금의 세상을 선도하고 있잖아요. 곧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저같이 로봇을 만드는 사람은 그냥 기반을 닦는 것뿐이고, 로봇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청년들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 새로운 리더가 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