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한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사고가 발생해 리튬 배터리의 화재 위험성이 다시 한번 상기됐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이차전지는 리튬이온전지인데 인화성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안전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대 과제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비인화성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전고체 배터리나 차세대 이차전지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그중 대기 중 산소(O₂)와 아연(Zn)의 전기화학 반응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는 아연공기전지가 리튬이온전지의 대체제로 주목받고 있다.
“아연공기전지는 현재 널리 사용되는 리튬이온전지와 비교했을 때, 이론적으로 에너지 밀도가 약 3배 정도 높고 수계 전해질을 사용해 화재 위험성이 낮으며 제조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적어 친환경적인 장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아연공기전지용 고내구성 공기극 촉매 소재를 개발한 이창호 연구원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차전지로써 충방전 효율을 높이기 위해 백금(Pt), 이리듐 산화물(IrO₂) 같은 값비싼 귀금속 촉매를 사용해야 된다는 점과 낮은 내구성이 상용화의 걸림돌이다. 그래서 이창호 연구원은 저렴하면서도 내구성이 뛰어난 촉매 소재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로 본 연구를 진행하게 됐다. 그 결과 전기방사 기술을 활용해 나노섬유 형태의 다성분계 산화물 지지체에 미량의 백금과 코발트(Co) 촉매 성분을 이온 형태로 고용한 후, 금속 이온이 선택적으로 표면에 노출되는 용출(ex-solution) 현상을 제어함으로써 고내구성 합금 나노입자 촉매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용출 현상의 메커니즘과 촉매의 활성 반응 부위도 규명했습니다. 이를 아연공기전지에 적용했을 때 기존 귀금속 촉매보다 충방전 효율이 더 높고, 수명도 3배 이상 긴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아연공기전지의 선결 과제인 고가의 촉매 사용과 낮은 수명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소재를 발굴해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차세대 이차전지뿐만 아니라 저가형 · 고내구성 촉매가 필요한 연료전지나 수전해 등 다양한 에너지 소재 분야에도 응용될 수 있어 앞으로 사회적으로 큰 효용성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본 연구 결과는 환경 · 에너지 분야 최상위 국제학술지인 <어플라이드 카탈리시스 B: 인바이런먼트 앤 에너지(Applied Catalysis B: Environment and Energy)> 7월호에 온라인 게재됐다.
보다 폭넓은 시각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면서
연구소에서의 실무적인 연구 경험이
향후 학생들의 취업 및 진로에
큰 도움이 될 것
이번 연구는 또 다른 측면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양대학교(HYU)는 ERICA캠퍼스 내 위치한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과 2021년부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HYU-KITECH 공동학과(이하 공동학과)’ 대학원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본 연구는 바로 공동학과 속에서 피어난 결과물이다. 이선영 교수의 학부 연구생이었던 이창호 연구원은 대학 졸업 후 이선영 교수의 권유로 공동학과에 진학했다. 이창호 연구원이 에너지 분야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이차전지나 연료전지 소재를 연구하는 윤기로 박사에게 지도받을 수 있도록 공동학과를 권했던 것이다.
“이번 연구는 이선영 교수님과 윤기로 박사님의 연구 분야를 접목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부 연구생 시절, 이선영 교수님 연구실에서 전기 방사를 이용한 다양한 산화물 나노섬유 합성 연구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학과에 진학한 후 윤기로 박사님의 연구 분야이자, 차세대 전지의 핵심인 전극 촉매 소재를 개발하는 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ERICA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완벽한 협력연구에 의해 탄생한 본 연구 성과는 공동학과가 기대하는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발휘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공동학과에 진학하면 수업을 제외한 시간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실험실에서 연구를 진행한다. 그러면서 다른 대학원 학생들과 동일하게 일주일에 한 번씩 지도교수에게 지도를 받는다. 그러니 공동학과의 대학원생은 지도교수가 둘인 셈이다. 이선영 교수는 이창호 연구원이 공동 지도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함으로써 우수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며 공동학과의 장점을 열거했다.
“연구소가 보유한 장비와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 대학원생들이 접하기 어려운 실용화 중심의 연구소 R&D 프로젝트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연구에 매진하다 보면 다소 학술적인 관점에 치우치기 쉬운데, 이러한 경험을 통해 보다 폭넓은 시각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더불어 연구소에서의 경력과 실무적인 연구 경험은 향후 취업 및 진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윤기로 박사 또한 공동학과 운영을 통해 ERICA에서 연구소에 없는 소재 분석 및 평가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그리고 인적 교류의 이점을 덧붙였다.
“최근 연구소는 연구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공동학과를 통해 우수한 인재와 교수님들과 함께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됐습니다. 한편, 공동연구 진행 시 학교와 연구소 간 거리가 멀어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는 경우가 많은데 ERICA는 연구소와 가까워 이동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앞으로 한양대 교수님들과의 협력 기회가 더욱 많이 창출되기를 바랍니다.”
우선 이번 연구에 대한 후속 연구부터 공동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본 연구를 통해 확인한 다성분계 내용출 현상 제어 기술에서 다양한 성분의 조합을 통해 고효율 촉매의 조합을 찾아낼 수 있다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다만, 고온 열처리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공정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이 과제로 남아 있다. 이선영 교수는 이 열처리 공정을 연구실에서 보유하고 있는 광소결(Flash light sintering) 기술로 대체한다면 소재 합성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윤기로 박사님 연구팀과의 선행연구를 통해 광소결 처리만으로도 유사한 용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촉매 소재 조합을 스크리닝해 최적의 성능을 가지는 소재를 더욱 손쉽게 제작하는 기술을 확보하겠습니다.”
그동안 쌓은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후속 공동연구에서는 보다 큰 시너지가 창출되기를 기대한다.
공동학과 운영을 통해 우수한 인재와 교수진이 함께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