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한양대학교 제85주년 기념식에서 약학과 최한곤 교수가 제12회 백남석학상을 수상했다. 백남석학상은 교육과 연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거둔 학자를 시상하는 상으로, 최한곤 교수는 국내 대학(경북대, 계명대, 단국대, 경남과기대)의 교수 5명과 외국대학의 교수 5명 등 수많은 석박사를 배출하는 교육적 성과를 이룩했다. 약학대학이 2010년에 설립된 것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또한 연구적인 면에서는 400여 편의 SCI 논문과 40여 건의 특허를 도출했고, 글로벌 학술정보분석기업인 엘스비어(Elsevier)가 양질의 연구자 평가를 목적으로 매년 SCOPUS(색인, 인용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논문 피인용도에 따른 영향력을 분석해 선정하는 ‘세계 최상위 2% 연구자’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최한곤 교수가 학자로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성과는 다른 데 있다. 바로 ERICA 약학대학 설립 당시 초대 학과장으로서 교과과정 및 강의실, 연구실 설계 등 학과의 기틀을 다지고 지금의 위상을 구축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점이다. 그렇다면 최한곤 교수는 교육, 연구, 봉사라는 대학의 3대 역할의 모든 면에서 우수한 업적을 거둔 학자라 할 수 있다.
“백남석학상이 쉽게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닌데 이렇게 수상하게 돼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동안 신설 학과인 저희 약학대학을 적극 지원해 주신 총장님과 부총장님들, 그리고 약대를 발전시키기 위해 교육과 연구에 전념해 온 약대 전 교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못난 지도교수의 말이면 무조건 따라준 제자들에게도 영광을 돌립니다.”
백남석학상에 대한 수상 소감을 부탁하자 오로지 약학대학을 발전시킨 공로만을 생각하며 함께 애써준 교수, 학생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렇게 최한곤 교수가 약학대학의 성장과 성과에 남다른 자부심을 느끼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ERICA 약학대학은 신설된 약학대학 중에서 입학 성적이 제일 우수할 뿐 아니라, 전체 약학대학에서도 5위를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창학 1년 차일 때 신진 교수들과 함께 BK사업팀에 선정되는 등 신설 약학대학 중 유일하게 BK사업단, 중점연구소 및 기초의과학선도연구센터(MRC) 등 집단과제를 도맡아 수행해 가장 탁월한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퇴임을 3년 앞둔 최한곤 교수는 그동안 연구자로서도 많은 성과를 거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물리약학과 산업약학으로, 이는 의과대학이나 자연과학대학에는 없는 약학대학만의 고유한 연구 분야다. 질병을 치료하는 화학물질 즉, 약물이 약효를 최대한 나타낼 수 있도록 성형하는 것으로, 시장에 출시되기 전 의약품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연구 과정이다. 그 중에서도 최한곤 교수는 지난 25년간 물에 녹지 않는 난용성 약물의 가용화에 관한 연구에 전념했다.
“일반적으로 약물이나 식품은 위장관에서 위장막을 통과해 흡수돼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데 위장막은 액체만 통과할 수가 있습니다. 약물은 물에 녹는 약물(수용성 약물)과 물에 녹지 않는 약물(난용성 약물)로 나뉘는데, 난용성 약물은 위장막을 통과하지 않고 변으로 빠져나와 약효를 나타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전체 약물 중 70%가 난용성 약물입니다. 게다가 항암제(파클리탁셀, 도세탁셀, 레고라페립 등 다수) 및 면역억제제(사이클로스포린 등)와 같은 고부가가치 약물과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타이레놀, 애드빌 등도 모두 난용성 약물입니다.”
따라서 난용성 약물이 기대하는 약효를 나타내려면 물에 녹여서 위장막을 통과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약물의 성분이나 정제 방식을 변경하거나 첨가제를 첨부하는 등 최적의 가용화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최한곤 교수는 이러한 난용성 약물의 가용화 연구에 매진한 결과 20여 가지 기술과 가용화 스크리닝 기법을 개발해 이 분야에서 세계 제1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전 세계 많은 연구자가 그의 논문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서두에 논문 피인용도에 따른 영향력 기준으로 세계 최상위 2% 내 연구자로 선정된 바 있다고 했는데, 정확히는 1% 안에 꼽힌다.
그래서 2023학년도 ERICA학술상에서 HCP 우수논문상과 국제논문 부문 우수교원상을 동시 수상했고, ERICA학술상 중 최우수 연구 업적상인 HYU학술상도 두 차례 수상했다. 또한 10년 이상 연구 실적이 탁월한 대한약학회 회원에게 수여되는 윤광렬 약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난용성 약물 가용화 연구를
체계화, 집대성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활용해
가용화 예측 시스템을 구축
최근 최한곤 교수의 연구는 한 단계 더 진화했다. 난용성 약물의 가용화 연구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고 있는 것. ‘인공지능 기반 맞춤형 약물 가용화 예측 시스템 구축’이라는 과제명으로 인공지능융합과 교수와 함께 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실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난용성 약물을 가용화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데 약물의 화학구조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학습하고 분석한 뒤 가장 효과적인 가용화 기술을 예측할 수 있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가용화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난용성 약물의 가용화 연구를 체계화, 집대성하기 위하여 인공지능을 활용해 가용화 예측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 과제를 완수하면 어떤 난용성 약물도 쉽게 가용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최한곤 교수가 축적해 온 난용성 약물의 가용화 연구에 대한 노하우와 첨단 인공지능기술이 만난다면 틀림없이 후대 연구자들에게 좌표가 되어 줄 표본을 남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최한곤 교수는 만만치 않은 연구라며 아마 퇴임까지 기대하는 성과 중 일부만 이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퇴임 후에도 연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최한곤 교수에게 난용성 약물의 가용화 연구에 대한 집대성은 연구자로서 일생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자로서의 바람을 덧붙이며 인터뷰를 마쳤다.
“교수라는 업은 연구자이기 전에 교육자이기 때문에 제자들의 성취를 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제자들이 교수가 되고 연구력이 향상되는 것을 보는 것이 저에게는 제일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약학대학에는 우수한 연구 역량을 갖춘 교수들이 많습니다. 그 연구력을 꾸준히 유지해 ERICA의 약학대학이 국내 최상위 약학대학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