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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온실가스의 14%가 철강 산업에서 발생

반도체, 자동차, 선박의 공통점은? 박주현 교수는 생각지 못한 질문으로 운을 뗐다. 바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출 품목이 아닌가. 하지만 박주현 교수가 기대한 답은 그것이 아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철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철강 생산 국가이자, 세계 1위의 철강 소비국가입니다. 인구 1인당 철강 소비가 가장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반도체, 자동차, 조선 산업에 있어 우리나라가 최고의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죠.”

어찌 이들뿐이겠는가. 건설, 기계, 전자제품, 의료 등 산업계는 물론, 일상생활 속에서도 철이 사용되지 않은 분야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온실가스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자연 상태의 산화철에서 산소를 떼어내야 철을 얻을 수 있는데, 여기에 지난 수백 년간 탄소가 사용된 탓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제철 기술로는 철광석으로 1톤의 철을 생산할 때 약 2톤의 CO2가 배출됩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온실가스 중 7%가량이 철강 산업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비율이 두 배에 이릅니다. 즉, 14%의 CO2가 철강 산업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박주현 교수가 이끄는 고온물리화학 소재공정 연구실은 현대제철 지정 연구실로 산업 현장의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세계 각국은 파리협정에 근거해 2016년부터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발표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철강 산업계도 적극 동참하고 있는데, 특히 유럽이나 일본의 철강기업들은 한발 앞서 온실가스 저감 기술을 개발하는 데 착수했다. 유럽연합은 2004년부터 ‘ULCOS(Ultra-Low CO2 Steelmaking)’ 프로젝트를, 일본은 2007년부터 정부 주도하에 ‘COURSE50(CO2 Ultimate Reduction System for Cool Earth 50)’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모두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철강 기술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목표 아래 전 사업을 저탄소 경제구조로 전환하는 중이다. 철강 산업에서는 2017년부터 정부 주도로 ‘COOLSTAR(CO2 Low-Emission Technology of Steelmaking and Hydrogen Reduction)’라는 친환경 철강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고온물리화학 소재공정 연구실은 친환경 철강기술 및 고부가 철강제품 제조기술 개발을 위해 국내 철강기업들과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탄소 대신 수소를 사용한다면?

“저희 연구실도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비록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10여 년 늦게 출발했지만, 20개가 넘는 대학, 정부출연연구소, 기업 등이 모여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1기 연구(2017~2023년)를 마치고, 올해부터 향후 8년간 2기 연구체제에 돌입하게 됩니다.”

COOLSTAR 프로젝트의 목표는 ‘수소환원제철’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친환경 철강 제조기술을 개발하는 것. 박주현 교수는 미래에는 탄소가 아닌 수소를 활용해 철을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소는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낸 후 CO2가 아닌 H2O, 즉 물을 만들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깨끗하게 철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수소를 어디서 가져올 것이며, 얼마나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환경을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이용해 물을 분해해 만들어진 ‘그린수소’를 이용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제철소에서 사용할 만큼 충분한 양의 그린수소가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철강기업들은 수소환원제철을 현실화하기 위해 호주, 중동, 동남아 국가에서 그린수소를 수입하는 방안까지도 검토하고 있다.

또 다른 대안은 철광석이 아닌 고철(scrap)로부터 고급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고철을 녹여 새로운 철을 만드는 경우에는 철광석에서 철을 생산할 때보다 CO2배출량을 약 5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선결과제가 있다. 고철을 녹이는 데 막대한 전기에너지가 필요해 진정한 친환경 철강 제조를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해야 한다는 점과 고철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고도의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국가나 기업이 미래 철강 기술의 패권을 장악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고급 철광석도 없고, 신재생에너지도 극히 부족합니다. 한마디로 불리한 상황이죠. 하지만 우리에게는 창의력과 근면성실함이 무기인 우수한 인재들이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도 국내 철강기업들과 다양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기업과의 협력, 다양한

공동연구를 진행하며

유기적인 협력관계 유지

철강기업과 손잡고 친환경 철강 기술 연구

지난 25년간 고부가 철강 제조 기술을 연구해 최고급 철강의 국산화에 기여해온 박주현 교수는 2021년 현대제철의 제1호 지정연구실로 선정돼 친환경·고부가 철강 제조 기술을 공동연구하며 우수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연구 협약 분야는 CO2저감을 위한 친환경 철강 공정을 개발하는 것이다. 즉, 고철이나 기타 철 원료를 전기로에 녹여 최고급 품질의 철강을 생산하기 위한 과정에서 전기로의 에너지를 절감하고, CO2를 줄일 수 있는 공정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CO2를 줄일 수 있는 공정기술뿐 아니라, 친환경 전기자동차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전기모터용 고급강판 제조기술도 연구하고 있다.

한편, 박주현 교수는 2022년부터 POSCO의 ‘탄소중립 그린철강기술 자문위원단’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POSCO 고유의 ‘하이렉스(HyREX, Hydrogen Reduction Ironmaking)’라 불리는 수소환원제철을 중심으로 한 친환경 철강 제조기술을 비롯해, 이때 필요한 수소의 생산 운반, 저장 및 다양한 에너지 확보 방안 등 전반적인 전략 수립을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학습하고 논의하고 있다. 여기서 박주현 교수는 ‘친환경 전기로 공정기술’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철강기업들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당장의 이윤 창출도 중요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ESG 경영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수립해 실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대학의 전문 인력들과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학은 각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고급 인재를 양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박주현 교수는 기술개발뿐 아니라 고급 인력 양성에도 주력하고 있다. 최고의 인재를 키우고, 그 인재가 산업현장에서 각 기업의 이익을 넘어 국가 발전, 그리고 인류와 환경을 위해 기여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말하는 박주현 교수. 그는 자부심으로 그 소정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박주현 교수는 고부가 철강 제조 기술 연구로 최고급 철강의 국산화에 기여해온 연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