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진 지 오래지만, 글로벌 최고의 신기술들이 자웅을 가리는 CES에서 일반 수상인 ‘혁신상(Honoree)’도 아니고 부문별 최고 제품에 수여되는 ‘최고혁신상(Best of Innovation)’을 수상한 게임이 있다면 달리 보이지 않을 수 없다. 바로 CES 2025에서 디지털 헬스 기기 분야의 최고혁신상을 받은 게임연구실의 ‘이명 디지털 치료 기기(TD2-Tinnitus Digital Treatment Device)’에 대한 이야기다.
“게임이라 하면 엔터테인먼트만 생각하기 쉬운데, 교육, 훈련, 치료, 사회적 문제해결 같은 특별한 목적을 수행하는 기능성게임(Serious Game)도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은 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시각장애인의 보행 훈련 프로그램이나 트라우마 치료 게임 같은 기능성 게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게임처럼 흥미를 유발하고 몰입감을 높이면 교육, 치료 등의 효과를 배가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서 게임을 접목하고 있다. 게임연구실은 이미 다수의 기능성 게임을 개발해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분야의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HCI, IJHCI, IJHCS 등에 논문을 발표해 왔다. 그러다 이명 디지털 치료 기기를 개발한 후 이에 대한 특허 출원을 한 김에 CES에도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처음 출사표를 던진 CES에서, 그것도 올해 CES의 핵심 분야 중 하나였던 디지털 헬스 기기 분야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심 혁신상 정도는 기대했지만 최고혁신상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 5년간 연구에 매진하느라 고생한 게임연구실 연구원들과 수상의 의미를 나누고 싶습니다.”
단순히 실험실 안 연구나 논문 발표에 그치지 않고 사용자의 테스트를 거쳐 시제품을 완성한 후 국제박람회에 출품해 최고의 평가를 받은 일련의 과정은 연구원들에게 값진 경험이 될 것이다. 게임연구실의 김지문 연구원(소프트웨어융합대학원 HCI학과 19)은 “석박 통합 과정으로 입학한 시점부터 전 과정을 지켜봤다”며 “기존에 없던 지식을 논문으로 보고하는 방법이나 이를 의료기기 사업화로 발전시키는 행정 절차 등 연구를 실생활에 필요한 기술로 구현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이명 디지털 치료 기기 개발은 이명 환자들의 치료를 목적으로 2020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범부처 차원에서 지원하는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으로 시작됐다. 김기범 교수의 게임연구실뿐 아니라 ICT융합학부 김성권 교수팀, 고려대 이비인후과 최준 교수 연구팀, (주)에이치브이알도 함께했다.
“청각, 시각, 촉각 피드백 시스템과 가상현실 기술을 결합해 환자의 이명을 생성형 AI를 통해 맞춤형 물방울로 구현했습니다. 이를 이명 입체 음향 아바타라 하는데 HMD를 착용하고 시각, 청각, 촉각의 다중 감각 자극을 제공하는 가상현실 환경 속에서 소리를 내는 물방울을 손으로 터트려 이명을 제거합니다. 이를 통해 환상통처럼 실제 들리는 소리가 아닌 이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교정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가상현실 디지털 치료 기기는 주로 자폐 등 정신건강 분야에 적용됐는데 이비인후과라는 새로운 분야에 접목했다는 점과 주사나 약물 투여가 없어 간편하게 환자 스스로 사용할 수 있는 비침습적 치료법이라는 점에서 혁신성을 인정받았다.
기기의 설계, 프로토타입 개발, 최적화 과정을 맡았던 안호준 연구원(소프트웨어융합대학원 HCI학과 22)은 “가상의 소리가 환자의 이명 소리와 최대한 유사해야 인지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어 AI를 활용하여 개인 맞춤형 샘플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며 “CES에서 많은 관람객이 관심을 보였는데 세상이 나아지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 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실제 게임연구실의 수상 소식과 함께 이명 디지털 기기가 방송 매체에 소개되자 이명으로 고통받는 환자들로부터 사용해 보고 싶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가상, 증강, 혼합현실 및 게이미피케이션
(Gamification)을 활용한 기술 개발로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를
극복하는 데 기여할 것
현재 게임연구실은 보건복지부 연구과제로 순천향의대와 함께 노출 치료를 통한 트라우마 극복 VR 시스템과 서경대 공연예술학부와 함께 무대 공연의 디지털 트윈 프로젝트에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하는 가상현실 인터페이스 및 인터랙션 시스템 등을 개발하고 있다. 트라우마 극복 VR 시스템은 코로나19 감염 후 회복 환자 및 의료진 중 다시 감염되지 않을지 불안을 호소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사실 HCI 분야의 기술 개발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실제 사용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용자 환경을 구축해야만 비로소 연구가 완료되기 때문이다. 이명 디지털 치료 기기가 5년이나 걸린 것도 그러한 이유다. 하지만 논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사용자들에게 활용되고, 특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한 기술을 개발한다는 점에서 느끼는 연구원들의 성취감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다.
“제가 처음 연구한 것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술이라 그런지 디지털로부터 소외받는 이들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게임연구실은 가상, 증강, 혼합현실 및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을 활용한 기술 개발로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를 극복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