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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집트학연구소를 세우고 이집트 고고학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는 곽민수 소장은 국내에 몇 안 되는 이집트학자다.

모든 길은 이집트로 통한다

‘이집트’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몇 가지 이미지와 함께 이집트에 대한 대표적인 인물을 꼽자면 단연 곽민수 소장 아닐까. 예나 지금이나 이집트 연구자는 흔치 않다. 곽민수 소장이 이집트 고고학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대학에 입학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학 내 이집트학 전공이 없었던 터라 당시 국내 최고의 고고학, 인류학 교수진 부임한 ERICA 문화인류학과를 선택했다. 훌륭한 스승을 통해 수준 높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지만, 교수진 역시 이집트 연구자는 아니었던 터라, 영국 유학길에 오를 때까지도 누군가의 가이드도, 정보도 없이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이집트 연구자의 길은 그야말로 개척의 연속이다. 과정이 녹록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건 무조건 실행한다는 삶의 준칙을 따라 걸어온 덕분에 곽민수 소장은 이집트를 포함한 고대 근동에 대한 주제가 있으면 가장 먼저 섭외되는 이집트 인플루언서가 됐다.

이집트 고고학은 남다른 유서와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문명 초기 인류 생활과 행동 양식을 조명하고, 우리는 이로써 현재를 바라보고 나아갈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5천 년 전 시작된 융성했던 문명 속에서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문명을 처음 시작했는지에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문헌 기록이 남겨져 있다는 건 전 지구적으로 이집트 문명이 독보적이다.

“고대 문명일수록 문자 기록이 흔치 않은데, 심지어 서기 4~5세기 삼국시대조차도 문헌 기록이 풍부하지 않아요. 특히나 어떤 사적인 기록 같은 건 잘 남겨지지 않거든요. 그런데 고대 이집트는 굉장히 풍부합니다. 그만큼 이집트를 연구할수록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지는 거죠.”

‘모든 길은 이집트로 통한다’는 곽민수 소장의 말처럼,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더라도 고대 이집트와 연결 지을 수 있을 만큼 연구 주제와 요소가 매우 풍부하다. 이집트학은 200여 년의 유서 깊은 역사를 바탕으로 특히 과거 제국주의 열강을 경험한 국가를 중심으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반면 국내 지역학 연구는 범위가 좁고 관심도 넓지 않다는 한계로 이집트학 연구가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 때문에 연구자 육성이 쉽지 않고 지원의 폭도 매우 좁은 현실적 배경을 덧붙였다.

“대학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실질적이고 신속한 성과가 나오는 것에 가치평가가 우선되다 보니, 순수학문에 가까운 인문학 연구는 사실 지원이 매우 낮은 상황이거든요. 실제로 제가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이집트 연구를 한다고 하면 코웃음치는 사람이 많았어요.”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던 시절부터 이집트와 고고학 연구를 방향으로 정했던 곽민수 소장은 유학 준비를 하며 이집트 연구의 ‘쓸모’를 증명하라는 사회 분위기와 제도를 몸소 겪었다. 그는 동문으로서 학생과 국내 대학에서 문화인류학 등 인문학에 대한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려와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동시에 연구 가치가 존중되고 확산하는 일에 힘을 다하고 있다.

한국이집트학연구소를 시작으로

이집트 연구자를 뒷받침할 수 있는

학술재단 만들어 나갈 것

노를 저어라! 물이 들어올 때까지

곽민수 소장의 꿈은 예나 지금이나 ‘이집트 연구자’다. 죽을 때까지 연구자로 살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더불어 한가지 꿈이 더 있는데, 이집트 연구자를 꿈꾸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이집트 연구자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누군가 이집트 연구를 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최소한 연구자로 살아갈 수 있는 어떤 기반을 만드는 게 제 목표거든요. 한국이집트학연구소도 세웠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연구소를 학술 재단화해 연구비를 조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이집트 연구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투자와 지원을 펼치고 싶다는 꿈. 이를 이루기 위한 곽 소장의 전략도 남다르다. 기업이나 기관, 정부 지원이 아닌 퍼블릭 펀딩을 유치하는 것이 가장 핵심인데, 여기엔 연구재단으로서의 방향성과 연구자의 개성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기업과 정부 기관에 연구의 목표나 목적, 연구의 쓸모를 증명하는 일은 배제하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지지와 지원 속에서 이집트학이 한국 사회에 당당히 하나의 학문 분과로 자리 잡기를 꿈꾼다. 이러한 꿈을 이루려면 일차적으로 대중들에게 이집트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심어주는 게 우선이다. 그가 대중 매체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 조금씩 그 과정이 진척되고 있다.

“최근 저를 통해 고대 이집트에 관심갖게 되신 분들이 상당히 많아진 것 같아요. 점차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이집트에 대해 알리고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죠.”

곽민수 소장은 매체를 통해 영향력이 커질수록 고고학자로서 신중과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역사와 문화를 되짚어 연구하는 과정에서 정확성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뿐더러 자신의 한마디가 곧 대중에게 정답으로 여겨질 것에 대한 신중함과 책임감으로 임한다.

“역사적 지식은 사용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치 않아 항상 빈틈이 많고 불완전하거든요. 그럼에도 무엇인가를 얘기할 때는 근거가 확실한 상태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우선이고 무엇보다 단정하는 어법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뿐만이 아니다. 곽 소장은 대중들에게 고고학과 역사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의 눈높이를 맞춘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추상화하거나 내용을 축약하는 것도 지양해야 함을 덧붙였다. 대중들의 어법과 화법에 맞게 내용이 전해질 수 있도록 학자들의 언어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의 이집트 얘기가 대중들에게 흡입력 있게 다가온 데는 그만한 노력이 있었음을 짐작게 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곽민수 소장은 평소 절친한 사이인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의 말을 인용했다.

“일반적으로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궤도라는 친구는 물이 들어올 때와 상관없이 계속 노를 젓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에 물이 들어와서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됐다면서요. 목표도 있고 구체적인 계획도 있지만 제 꿈이 실현될지 안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하던 대로, 안될 것 같아도 계속해 이집트 연구를 지속하겠다는 곽민수 소장의 뚝심이야말로 연구자가 견지해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가 아닐까.

곽민수 소장은 각종 매체 출연을 통해 이집트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전달하며 대중의 관심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