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과 교수
인구감소 위기를 대비하자는 움직임이 부산하다. 오륙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설마설마했다. 그런데 2023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2%로 내려앉은 것을 보고 외국의 학자가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말했대서 갑자기 화제가 되었다. 2023년 서울시의 합계출산율은 그보다도 훨씬 낮은 0.55%를 기록했다. 통계청 홈페이지의 인구 상황판에 게시된 시뮬레이션은 2024년 현재 대한민국 인구 5,200여만 명이 2072년에는 3,600여만 명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예측한다. 단순한 인구수 감소보다 그 속도가 더 눈에 뜨인다. 지금 추세를 전제로 하면 2024년 현재 19.2%인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2072년에는 전체 인구의 거의 절반(47.7%)에 육박한다. 같은 해 14세 이하 유소년 비율 예측치는 인구의 6.6%다. 그냥 거리가 노인으로 가득 찬 세상이 온다는 얘기다.
실은 1983년에 이미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1%로 낮아졌었다. 그런데 당시 인구보건 정책 당국의 표어는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였다. 둘을 낳지 말고 제발 하나씩만 낳으라는 이야기. 그것은 세계적으로 손꼽힐만한 산아제한 정책의 성공사례이자, 생산양식과 문명의 거대한 트렌드를 읽는 인류학적 시각이 완전히 결여된 ‘찬란한 미봉책’이었다.
한국의 급격한 인구감소는 전 지구적 트렌드의 일부다. 지구상 대부분 국가의 2023년 합계출산율은 재생산 가능 수치인 2.1%를 한참 밑돈다. 산업혁명을 한반도보다 먼저 겪은 유럽 국가 중 일부는 1930년대에 이미 합계출산율 2.1% 수준이었다. 이후 적극적인 외국 이민 유입과 극적인 사회문화적 변화를 거치며 그들의 인구수는 유지되거나 서서히 늘었다. 2024년 현재 미국의 합계출산율은 1.66%, 유럽 평균은 1.55%, 라틴 아메리카는 1.9%,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평균값은 1.2%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80억 명인 세계 인구는 2080년경 100억 명 수준에 도달한 이후 몇 세대 뒤, 다시 20억 명 정도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소위 산업 선진국들의 합계출산율은 지속적으로 서서히 줄어왔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지구 전체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백년 전 1920년경 남한 인구는 지금의 5분의 1인 1천만 정도였다. 당시 지구 전체의 호모 사피엔스 인구는 현재 수준의 4분의 1인 20억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산업화의 전 지구적 확산은 인류가 사는 방식과 논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식량 생산량은 급증하고 보건위생의 수준이 올라가 영아 사망률이 획기적으로 감소했다. 그리고 평균 수명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 결과인류의 개체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대신 수많은 다른 생물종들이 멸종해 갔다). 고도의 생산성을 뒷받침하는 에너지 소비로 이산화탄소의 발생량은 지속적으로 누적, 증대해서 오늘날 돌이키기 어려운 수준으로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는 중이다.
전 지구적 산업화는 인류문명의 성격을 바꿨다. 그중에서도 특히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의 ‘기적’을 보여준 한국 사회에서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문화 급변이 발생했다. 수천 년 동안 단순노동 인력에 의존해 온 농업 주도 생산양식이 수십 년만에 고도의 기술과 지식노동에 의존하는 후기 산업사회 생산양식으로 넘어왔다. 이에 필요한 사회구성원 전체의 교육 수준이 놀랄 만큼 증대되었다. 특히 출산과 가사노동을 주로 담당하던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자아의식, 자기 주도권이 발전했다. 반면 직장과 사회에서의 양성평등은 아직 갈 길이 멀고, 남녀 간 가사노동분담률은 여전히 심각한 불균형이다. 자유와 공정성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고 인권 의식의 증대도 있지만, 반작용도 만만찮다. 이에 더해서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을 통해 업무 소통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개인화, 취향화, 디지털화가 빠르게 자리 잡았다. 그것이 여가시간을 지배하게 되었다. 문화 영역 간의 속도 차이, 그로 인한 불균형이 심각하다.
도시 공간과 주거정책,
직업과 소득분배와
일상적 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합의들이
새로운 생활양식의 틀을
만들어야 할 때
문화변동의 영역별 속도 차이로 인한 지체 현상이 크다 보니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고도성장과 함께 팽창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분위기를 백여 년 경험하면서 ‘부동산 불패론’이 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극도의 경쟁 문화와 개인주의, 뒤처질 지 모른다는 불안증이 일상의 기본 세계관이 되었다. 농촌탈출과 국토의 양극화, 사회 계층화 속도 또한 가팔라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할 생각도, 시간도 확보하지 못했다. 개인의 고립화와 관계의 단절, 가족을 비롯한 공동체의 실질적 와해, 소통과 합의의 어려움이 만연하는 문제로 대두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1인 가구 수의 비율이 36% 이상으로 가장 높으며, 그 추세는 증가 중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는 비율(2023년에 37%)도 늘어난다. 비관적 미래 전망은 윤리의식과 사회적 질서 존중의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종류의 범죄와 사회불안 요소가 증가한다.
이제 현상을 더 폭넓은 시야로 보고, 더 큰 흐름 속에서 다시 위치 매기며 설명해야 한다. 어떤 정책도 지금 전 지구적 인류문명의 차원에서 진행 중인 인구감소 현상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적응을 준비하고 속도 조절을 시도할 수는 있다. 사실 전 지구적 합계출산율 감소 현상은 이산화탄소 발생량의 축적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 현상, 그리고 생태계 변화와 글로벌화로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 팬데믹 발생 빈도 증가 현상과 하나로 엮여 진행 중이다. 인류는 거대한 생물체의 군집으로서 이제 자기 개체 수 증가 속도를 조절해야만 생존 유지가 가능하다. 에너지 사용량도 증가가 멈춰지거나 적어도 부분적으로 줄어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확대재생산을 전제로 하는 산업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에 대한 변화를 요구한다. 이때 한국이 해야 하는 것은 성급하게 행하는 출산장려금 지원이나 기타 거친 인구정책이 아니다. 거대한 파도들이 연이어 몰려오기 시작하는데 그 앞에 대강대강 야트막한 모래주머니를 허겁지겁 쌓는 것은 별 효과도 없는 비용과 희생만 더할 뿐이다.
우선 인구감소의 큰 추세를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맞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한국의 성인 자살률, 이혼율, 충격적으로 낮은 행복지수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분절되고 고립된 사람들을 후기 산업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어줄 수 있는 ‘돌봄 공동체’, ‘관계 품앗이’의 사회 안전망이 재구성되어야 한다. 인권과 문화 다양성의 존중 방법을 찾아야 한다. 획일적이었던 문화적 가치관의 잣대를 바꿔 노약자, 여성, 외국계 이주민, 어린이, 장애인, 성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는 포용성이 넓은 사회로의 이동을 꾀해야 한다. 도시공간과 주거정책, 직업과 소득분배와 일상적 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합의들이 새로운 생활양식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소비와 생산의 무한 팽창을 전제로 하는 초 경쟁적 산업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을 넘어 보다 균형 잡힌 세계관에 근거한 실천적 행동들을 기획하고 추진해야 한다.
지금은 어쩌다 그냥 아이를 낳는 시대가 아니다. 출산과 육아는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프로젝트가 되었다. ‘내가 보다 살만한 세상’으로 가고 있다고 느껴야 그런 세상에서 ‘내 아이를 낳고 키워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