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국 등 반도체 기술을 둘러싼 글로벌 패권 경쟁이 격심해져 반도체 기술은 일종의 국가 전략 기술이 됐습니다. 단순히 수익을 창출하는 산업을 넘어 국가의 미래가 걸린 중차대한 산업이 된 것이죠. 그러니 반도체 전문인력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산업 전사에 비견할 만합니다.”
경기도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사업 공유대학 사업단장인 유봉영 교수가 지금 이 시점에서 왜 반도체 전문인력을 육성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피력했다.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겠다는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유럽연합, 일본, 대만, 네덜란드 등도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겠다고 나서 국가별 각축전이 한층 치열해졌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반도체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다져왔지만,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인공지능 등 차세대 지능형 전자기기들이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그에 필수적인 반도체 산업은 슈퍼사이클을 맞아 전문인력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산업은 기술의 발전이 매우 빠른 분야다. 기술시장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시장에서 원하는 우수한 인력을 양성하는 데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경기도는 도내 반도체 산업계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경기도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사업 공유대학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2024년 2기 사업 공모에 ERICA(주관대학), 가천대, 한국항공대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경기도는 반도체 업체의 64%가 분포하고 있으며, 산업 부가가치로 따지면 약 83%를 차지하는 지역입니다. 이천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화성과 수원, 기흥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해서 반도체 장비 및 소재 업체들이 집결해 있습니다. 때문에 경기도가 기업 수요 맞춤형 반도체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데 발 벗고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경기도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사업 공유대학 사업은 2025년 12월까지 총 9억 원을 투자해 대학 · 기업 연계 실무형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연간 대학(원)생 60명, 비전공 대학생 및 취업 희망자 40명씩 총 100명의 반도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사업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 중에서도 소재 분야 인력 양성에 중점을 둔다.
“설계, 공정 · 장비, 소재가 반도체 산업의 3대 기술 분야입니다. 그중 소재는 전 분야에 걸쳐 가장 토대가 되는 분야로, 기술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려서 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이 오랫동안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어, 특히 국산화율이 낮은 분야죠. 하지만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한국 수출 규제로 국산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경각심이 일어나 반도체 소재 산업 육성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이에 반도체 패키징용 클린룸과 노광 · 증착 클린룸을 갖추고 패키지용 소재 기술, CMP 및 세정 소재, 도금 기술에 관한 최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ERICA와 ALD, RIE 장비와 분석 장비, 옐로우룸을 구축하고 반도체용 금속 소재 기술에 특화한 가천대, 기판 및 방열 소재에 특화한 한국항공대가 반도체 소재 전문인력을 키우기 위해 의기투합한 것이다. 게다가 ERICA 내에 미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소재 기업인 인테그리스가 종합연구소를 짓고 있으며, 버슘머트리얼즈라는 외국계 소재 기업도 인접해 산학협력 연구를 진행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자랑한다.
“신속히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고 반도체 장비 생산 업체와 소재 업체 간 교류를 촉진해 새로운 아이템,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는 데 주력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그에 맞는 교육 과정을 개발해 인재를 선제적으로 육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과 기업이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돼 유기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사업단은 산업계 수요를 조사해 그에 따른 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이론과 실습 교육을 병행해 실무 밀착형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컨소시엄 기업과 연계해 심화 교육과정을 운영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반도체 실무능력과 신기술을 습득한 반도체 소재 분야의 우수한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경기도 내 기업과 대학의
학생들이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발전을 꾀하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
이번 사업의 특징은 3개 학교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유대학 형태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즉, 분산돼 있는 교육 인력 및 실험 장비를 서로 공유해 교육 역량을 공동 활용할 방침인데, 예를 들면 특강이나 세미나 프로그램은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진행해 3개 학교의 학생이 모두 참여한다. 한편, 개설된 반도체 소재 관련 강의 중 4과목 이상 수강하고 3.5 이상의 학점을 받으면 사업단 이름으로 나노 디그리(최소 단위의 실무형 단기 교육 과정) 수료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점도 특징인데, 장학금까지 지급된다.
“반도체 장비는 고가입니다. 한 학교에서 전 공정라인의 장비를 구축하거나 전 분야를 교육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소속 대학의 전통적인 학습 형태를 넘어 타 대학의 강의를 수강할 수 있도록 학습 선택의 폭을 넓혀 우수한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고, 미래지향적인 인력양성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경기도 반도체 인력양성 사업은 도내 반도체 소재 기업에서 근무하는 재직자들이 전문성과 역량을 꾸준히 발전시킬 수 있도록 비학위 과정도 운영한다. 어느 분야보다 기술의 발전이 빠른 분야이지만 반도체 소재 기업은 중소 · 중견업체가 많아 자체적으로 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 최신 반도체 소재 관련 정보를 습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16시간 이상의 실습 교육도 받게 된다.
“교육부나 산업부, 과기정통부에서 추진하는 인력양성 사업은 많습니다. 하지만 본 사업처럼 경기도, 즉 지자체에서 대학과 함께 인력사업을 진행하는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이를 통해 경기도에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균형 있는 사회 발전을 위해 지역 특성을 살려 산업과 인력양성이 이뤄져야 합니다. 경기도에 위치한 기업과 대학의 학생들이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발전을 꾀하는 좋은 본보기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