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동문을 소개하는 본지(당시 제호는 ‘Hi HY ANSAN’이었다)의 칼럼에 ‘으라차차 광작가’라는 제목으로 김민석 동문의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다. 대학 때부터 ‘광작가’라는 필명으로 본지에 카툰을 연재한 것을 비롯해 국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 1호라는 명함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던 터라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었지만 이례적으로 지면을 장식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만난 김민석 동문의 모습은 그간의 세월을 무색하게 했다. 여전히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음은 물론, 단박에 스포츠광임을 알 수 있는 스포츠 팀 로고 티셔츠와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두건까지, 당시 게재됐던 사진 속 모습과 판박이였다. 실은 대학 때도 같은 차림으로 캠퍼스를 누볐다고 한다.
“벌써 17년이나 된 줄 몰랐습니다. 연재를 그만두기로 한 날, 내 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면 언젠가 인터뷰 요청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정말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됐네요. 최근 적잖이 인터뷰 의뢰를 받고 있는데 ‘HY ERICA’의 요청은 특별히 더 반가웠습니다.”
삼성라이온즈(야구), 현대캐피탈(배구) 등 프로 스포츠 구단의 각종 홍보물을 장식하는 선수들의 일러스트를 비롯해,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국가 대표팀 유니폼 로고 디자인, 모바일 메신저 라인(LINE)의 NBA 레전드 선수 스티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단과 KBO리그 40주년 기념 ‘40인의 레전드’, 2023년 SBS의 항저우아시안게임 일러스트 등. 세간에서 김민석 동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처럼 굵직굵직한 작업을 하며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닦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농구 전문지 ‘월간 루키(현 루키더바스켓)’에 처음 일러스트를 게재하며 일을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건만, 일반인들에게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함은 여전히 궁금증을 자아낸다.
“주로 스포츠 분야에 특화된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습니다. 스포츠 구단이나 기업으로부터 작업을 의뢰받아 그리고 있죠.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에 저의 해석을 더해 콘셉트, 그림체 등을 제안하며 협업하는 방식입니다.”
김민석 동문의 어릴 적 꿈은 대통령도, 과학자도 아닌 만화가였다. 수시로 바뀌는 것이 어릴 적 꿈일진대, 김민석 동문의 꿈은 시종일관 오로지 만화가였다.
“그림 그리는 것을 워낙 좋아했어요. 방에 처박혀 온종일 그림만 그릴 정도였죠. 특히 책이나 공책 여백에 그리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학교에 불려오신 적도 있죠.”
말수가 적은 외톨이였기 때문에 더욱더 그림에만 몰두했다는 김민석 동문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운명의 길로 발을 들인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당시 인기 절정의 NBA 농구에 푹 빠지게 된 것. 수없이 골대를 향해 농구공을 날린 것은 물론, 자연스럽게 유명 농구 선수들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낙이 됐다. 그러다 정식으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로데뷔하게 된 것은 브랜드 파워 관련 대학 수업 때 일생일대의 칭찬을 들으면서다.
“강사님이 아는 스포츠 브랜드를 대보라고 하셔서 잠시 론칭했다가 사라진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를 댔더니 훌륭한 학생이라며 기대 이상의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혼자서 그림만 그렸지 세상에 나가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자신감을 갖게 됐죠.”
별 뜻 없는 칭찬이었을지 모르나 이는 김민석 동문 안의 무엇인가를 마구 용솟음치게 했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자 그림을 평가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그래서 그동안 남몰래 그려온 스포츠 그림들을 강사에게 보였는데, 스포츠 매체에 보내보라는 격려를 들어 무작정 농구 전문지인 루키에 포트폴리오를 보내는 용기를 냈다. 루키 측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 놀라워했지만 김민석 동문의 열정을 높이 사 일러스트를 의뢰하게 됐다. 당시 김민석 동문은 대학 2학년이었고, 이때부터 국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 1호의 길을 걷게 됐다.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몰입할 수 있을 것
좋아하는 그림과 스포츠를 접목해 20년이 넘도록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으니 김민석 동문은 ‘성덕(성공한 덕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로 일가를 이루겠다는 거창한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좋아하는 그림을 열심히 그리며 한 우물을 파다 보니 그러한 열정과 뚝심을 인정받아 작업 의뢰가 하나둘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간혹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도 되는지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 그 일이 경제적 안정을 담보하지 못할 때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김민석 동문의 말은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면 당연히 보다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여유와 안정을 원한다면 그건 그 일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여유와 안정을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이미 몰입하고 있을 겁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사실 김민석 동문이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대기업에 입사해 산업 디자인을 하는 것을 최고로 여기던 때라 스포츠 일러스트를 그리겠다는 김민석 동문을 지지해주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이렇게 본지와 두 번째 인터뷰를 하는 동문이 되지 않았는가. 그러고 보니 17년 전 인터뷰 때 스포츠 일러스트가 활성화된 미국에서 실력을 평가받고 싶다던 은 실현했는지 궁금해졌다.
“아, 그때 그런 이야기를 했었네요. 심심치 않게 해외 작업도 많이 했습니다. NBA아시아와 일한 적도 있고요. 그런데 아직 해외 스포츠 구단의 정식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 적은 없기 때문에 아직 진행형입니다. 그림을 더 잘 그리게 되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미국 진출을 위해 틈틈이 영어 공부도 했지만, 최근 번역기의 눈부신 발전에 언어 대신 그 안에 담을 내용을 위해 독서를 하고 있다는 김민석 동문. 그래서 바쁜 일과 중 빼놓지 않는 세 가지가 독서와 운동, 그리고 낙서다. 여전히 자신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연마하게 하는 힘은 역시 재미일 것이다. 그러한 김민석 동문의 모습을 보니 언젠가 세 번째 인터뷰를 청할 날이 올 것이라는 강렬한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