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DC 그리드 에너지 혁신연구센터가 개소식을 가졌다. 향후 6년간 한국형 DC 그리드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산학연 협력 연구와 핵심 인력 양성의 허브가 될 것이다. DC 그리드 에너지 혁신연구센터를 찾아 연구센터의 비전과 DC 그리드 연구에 대한 국내 현황, ERICA의 경쟁력에 대해 들어본다.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류전쟁(current war)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나요?”
이방욱 센터장이 최근 교류(AC) 송전 방식에서 직류(DC) 송전으로 전환되는 배경을 설명하기에 앞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교류와 직류 중 무엇을 표준으로 정할 것인지를 놓고 벌인 전류전쟁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토머스 에디슨은 직류 전력을, 니콜라 테슬라는 교류 전력 시스템을 발명해 두 천재의 격돌이 벌어졌는데 교류 시스템이 평정하면서 오늘날 전 세계 주요 전력 시스템은 모두 교류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전력 시장에서 도태된 줄 알았던 직류 시스템이 최근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첫째, 직류 전력 시스템은 손실이 적어 장거리 전송에 유리합니다. 그래서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백에서 수천 ㎞ 떨어진 소비 지역까지 효과적으로 전송할 수 있죠. 둘째, 섬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해저 및 지하 케이블은 직류로 운영돼야 합니다. 셋째,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은 대부분 DC 전력을 생성합니다. 이를 AC 그리드에 통합하려면 인버터를 통한 변환이 필요한데 DC 그리드를 사용하면 변환 과정이 필요 없거나 최소화할 수 있죠.”
이 외에도 DC 그리드는 AC 그리드의 주파수 편차에 덜 민감해 안정적이며, 전력 품질 문제를 줄일 수 있고, 에너지 저장 시스템과 통합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다. 21세기 들어 장거리 대용량 송전, 국가·대륙 간 전력 계통 연계, 해저 전력 전송용 HVDC(High Voltage Direct Current) 전력 시스템이 부상하면서 관련 연구와 시장이 급속하게 팽창하고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 통합과 관련해 HVDC 기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스마트폰, IoT, 전기자동차도 직류 시스템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럽, 중국, 일본이 DC 그리드 기술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DC 그리드 기술은 현재 유럽 업체가 주도하고 있고, 중국은 자국 내 폭발적인 수요에 맞춰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유럽 업체를 인수해 입지를 강화하고 있죠. 국내 업체는 후발 주자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니 조만간 기술 자립을 이룰 것입니다.”
2030년까지 K-DC 그리드 핵심 기술을 개발,
인력 양성을 위한 기업 · 정부 · 대학의 자립형 허브 구축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에서는 에너지 혁신연구센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까지 전국적으로 12개 에너지 혁신연구센터를 건립할 예정인데, 그중 DC 그리드 관련 기술 연구개발 및 인력양성을 위해 지난 9월 ERICA에 ‘DC 그리드 에너지 혁신연구센터’가 개소했다.
“DC 배전망을 확대하려면 전압 레벨 표준화, 대전력 고효율 전력 변환 기술, 고조파 필터 및 차폐 기술과 같은 관련 기술이 개발돼야 합니다. 그러나 기술개발을 위한 전문 인력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따라서 DC 배전 관련 기술의 자립화를 위해 관련분야에 대한 전문인력 양성이 필요합니다.”
DC 그리드 에너지 혁신연구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ERICA는 지난해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서울대학교 교수진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의 혁신연구센터 사업에 응모했다. 당시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은 ERICA 컨소시엄을 비롯해 2개의 센터를 복수 지정해 센터 운영 계획 및 1차년 추진 결과를 평가한 뒤 2차 연도에 한 개 센터를 선정하기로 했다. 그 기간 동안 ERICA 컨소시엄은 전문가 초청 세미나 및 DC 그리드 주제 토론회를 개최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했으며, 독일 아헨공대 및 중국 칭화대와 MOU를 체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경쟁 센터를 제치고 2023년 5월 혁신연구센터 사업에 최종 선정돼 매년 10억 원씩 6년간 지원받게 됐다.
“2007년부터 퓨전전기기술응용연구소를 운영하며 뇌충격 내전압 시험 설비 등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연구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점이 주효했습니다. 지원비는 대학원 인력 양성 및 연구시설 구축비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DC 그리드 에너지 혁신연구센터는 ERICA 전자공학부 교수 4명, 서울대 교수 1명, 한국산업기술대 교수 1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60여 명의 대학원생이 투입될 예정이다. 또한 LS일렉트릭 등 국내 중전기 대기업 3사와 한국전기안전공사 연구원, 한국전력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와 중소기업도 19개 사가 참여하고 있다. 대학, 연구소, 기업체가 초대형 컨소시엄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이를 기반으로 현장 중심의 실용적인 연구를 진행해 차세대 직류송배전 분야에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지난 9월 정식으로 개소식 행사를 가진 후 국내외 우수 연구소 및 대학과 MOU 체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LS전선, 한국전력과 공동 세미나 및 직원 재교육에 대한 계약을 맺고 진행할 예정입니다. 기업체 초청 세미나, 난상토론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12월에는 중국 시안교통대와 MOU 협약도 체결하고, 내년 2월에는 우리나라에 건설된 해남 HVDC 2호기, 완도 HVDC 3호기를 견학할 계획입니다.”
인력양성과 관련해서는 3개 대학 간 연합 교육 커리큘럼을 구성해 DC 그리드 정규 강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그리고 DC 그리드 기술교육 인증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전력운영 그룹, 전력변환 그룹, 전력기기 그룹을 중심으로 산학연 연구 그룹을 구성해 교육 이수 사항, 연구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전문인력 양성 평가 및 인증제도를 구축하고 있다.
한편, 국내 대부분의 관련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참여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기업 수요 맞춤형 연구과제를 도출해 학생들과 산학연 협력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고신뢰성 절연 및 스마트기기 진단 기술, DC 그리드 전력망 운용 기술 등 6개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게 된다. 현재도 참여 기업과 10여 개의 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DC 그리드 에너지 혁신연구센터의 최종 목표는 2030년까지 K-DC 그리드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인력양성을 위한 기업, 정부, 대학의 자립형 허브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즉, 석·박사 전문인력을 100명 양성하고, 참여 기업을 40개 사로 늘리며, 500명의 산업체 인력을 재교육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향후 지원사업이 종료돼도 ERICA를 대표하는 자립형 연구센터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