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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재 교수와 다중감각 지능 및 인터랙션 연구실 학생들

촉각의 느낌을 손쉽게 설명 가능한 추정 원리

“연구자에게 정말 값진 상이고 일생에 한 번 받기도 쉽지 않은 상이라 아직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가설과 실험 설계, 진행, 그리고 분석을 반복하며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힘든 과정을 거쳤는데 이렇게 큰 상으로 돌아와 정말 기쁩니다.”

햅틱스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IEEE 트랜잭션스 온 햅틱스(IEEE Transactions on Haptics)』 저널에는 연간 400여 건의 논문이 투고되고 그중 70~80건이 실린다. 그렇게 실린 논문 중 최고의 논문으로 꼽힌 것은 연구자에게 큰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유용재 교수는 여러 주파수의 복잡한 진동 촉각을 사람이 얼마나 강하게 느끼는지 추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는데, 이러한 과학적 추정 방법론이 향후 타 연구나 산업계에 미칠 파급효과가 큰 만큼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되기 충분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음악이나 TV 볼륨을 생각해 보도록 하죠. 우리가 듣는 소리의 크기는 공학적으로 데시벨(dB SPL) 척도를 이용하지만, 실생활에서는 TV나 스마트폰처럼 볼륨으로 표현합니다. 진동 촉각 또한 진동 가속도 및 변위와 같은 측정 값이 있지만, 사람이 얼마나 강하게 느끼는지를 ‘촉각의 볼륨’으로 나타낼 수 있다면 좋겠죠. 이를 인지 강도라고 부릅니다. 인지 강도를 쉽게 추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복합 진동에서 인지 강도의 ‘삼각 합(Pythagorean Sum)’이라는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퍼 스피커 같은 진동의 인지 강도(볼륨)가 3이고, 휴대폰 진동의 강도가 4라면, 두 개를 합친 복잡한 패턴의 진동은 강도가 5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기준이 되는 진동의 인지 강도를 알면 복잡한 형태의 진동도 삼각 합을 통해 얼마나 세게 느끼는지 추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시각과 청각뿐 아니라 햅틱 효과까지 고도화시켜 각종 게임이나 VR, 4D 영화, 놀이동산의 어트랙션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적용하면 보다 사실적이고 풍부한 감각을 제공할 수 있다.

“현재의 햅틱 효과는 온·오프 등 기초적인 기능만 제공하는 단순한 수준입니다. 사용자에게 현실적인 환경을 재현해주려면 촉각이 매우 중요합니다. 본 연구는 사람들이 촉각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쉽게 설명 가능한 일종의 손쉬운 추정 원리를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고품질의 햅틱 효과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좀 더 몰입감있는 가상현실이나 사실감 있는 햅틱 효과 등 콘텐츠의 발전을 이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7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IEEE WORLD HAPTICS 2023에 참석한 유용재 교수와 학생들. 이날 열린 학회에서 유용재 교수는 『IEEE 트랜잭션스 온 햅틱스』 연간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연구에 사회적 가치를 담다

유용재 교수가 이끄는 ‘다중감각 지능 및 인터랙션 연구실’은 가상현실과 햅틱스를 비롯,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Human-Computer Interaction) 분야를 연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학뿐 아니라 심리학이나 감성과학, 인지과학 등이 융합된 학제적 연구가 요구된다. 결국 사용자가 어떻게 느끼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하는 것이다.

“햅틱 기술을 통해 개인적,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각, 청각 장애인에게 정보를 전달한다든지, 가상현실 기술과 결합하여 그리운 가족이나 반려동물을 가상현실에서 만난다든지, 아바타 테라피(Avatar Therapy)를 통해 광장 공포증이나 무대 공포를 극복하도록 도와줄 수도 있죠. 저 또한 저의 연구가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뜻있는 곳에 사용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실험실이나 컴퓨터 안에만 머무는 연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는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가치를 갖는 연구의 일환으로, ‘주식회사 닷’과 산학 R&D 연구를 진행해 시각 장애인을 위한 촉각 그래픽스 변환 알고리즘 및 시스템을 개발했다. 동 회사의 촉각 디스플레이 장치인 ‘닷 패드’라는 제품을 활용해 골프 경기 중계에서 공의 궤적, 점수판 등 화면에 나타나는 시각적 요소를 시각 장애인이 촉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자동 변환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 본 연구에 참여한 학생들도 유용재 교수와 뜻을 같이했다. 김은채 학생(인공지능학과 21)은 “사회적 약자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며 “본 연구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유용재 교수가 학생들에게 강조한 점은 실 사용자인 시각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학생들은 연구 과정에서 시각 장애인들을 만나며 의견을 구해 시스템을 설계, 구현하는 데 반영했다. 연구에 참여한 김해림 연구원(인공지능융합학과 23)은 “연구란 생각보다 더 섬세하고 깊이 있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실제 사용자들을 항상 생각해서 힘들어도 100개의 방향성과 100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도 배웠다”고 말했다.

다중감각 지능 및 인터랙션 연구실은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햅틱스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사용자 경험을 생성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연구가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뜻있는 곳에
사용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

유용재 교수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인간중심 컴퓨팅 및 상호작용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연구

이렇게 개발된 연구 시연품(Demo)은 네덜란드에서 열린 ‘IEEE 월드 햅틱스 콘퍼런스(World Haptics Conference) 2023’에 선보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햅틱스 분야에서 가장 좋은 학회로 올해 출품된 시연품 132편 중 40%가 탈락한 데다, 참가자 대부분은 박사급 연구원들이었다. 그 사이에서 학부생 3명이 한 학기 만에 개발한 시연품이 채택돼 발표의 기회까지 얻은 것은 매우 고무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설립된 지 1년도 안 된 신생 연구실인 다중감각 지능 및 인터랙션 연구실에 연이어 희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정민호 학생(컴퓨터학부 18)은 “기능을 하나씩 구현해 나가며 개발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며 “국제 콘퍼런스에도 참여해 전공 분야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유용재 교수의 지도법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학생 스스로 탐색을 통해 답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학생들이 좋은 연구자로 성장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지금과 같이 열정적으로, 학생들과 함께 즐겁게 연구하고 싶다는 유용재 교수의 꿈은 이번에 받은 최우수 논문상을 언젠가 학생들과 함께 다시 한번 받는 것이다. 스스로도 굉장히 도전적인 목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유용재 교수.

“꼭 수상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 질적으로 훌륭하고 파급력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뜻이죠. 그 파급력이 가상현실이나 햅틱스 분야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다른 학문 분야와 사회적으로도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