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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중심의 논리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다

신진 크리에이터를 위한 국제 디자인 공모전 렉서스 어워드 2023에서 5년 만에 한국인 팀이 수상했다. 렉서스 어워드는 예측성(Anticipate), 혁신성(Innovate), 심미성(Captivate), 행복 증진(Enhance Happiness)을 기준으로 미래에 도움이 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박경호 학생과 허예진 학생이 출품한 ‘제로백’은 제품 사용자들에게 편리함을 주는 동시에 친환경 소재로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두 학생은 디자인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산업디자인학회 ‘IDM(Industrial Design Membership)’을 통해 알게 된 사이다. 리빙웨어디자인 수업에서 제시된 ‘업사이클링’을 주제로 소재를 연구하던 중, 물에 녹는 수용성 플라스틱 포장지를 고안하게 되면서 제로백 개발을 시작했다. 아이디어를 점차 발전시키던 지난해 6월, 렉서스 어워드 개최 소식을 접하고 제로백 프로젝트가 주제에 적합하다고 판단해 지원하게 됐다.

제로백은 해조류에서 추출한 필름으로 만들어진 패키지에 종이 세제 필름이 부착된 의류 포장지다. 일반적으로 옷을 구매할 때 소비자는 비닐에 포장된 제품을 받게 되는데, 이때 옷을 꺼내어 세탁하는 당연하지만 번거로운 과정이 동반되고, 비닐 포장재 또한 쓰레기로 배출된다. 제로백은 쓰레기 배출을 억제하고 세탁 과정을 간소화한 제품이다. 제로백에 포장된 옷을 그대로 세탁기에 넣으면 되기 때문이다. 박경호 학생은 이 아이디어에 담긴 디자인적 가치를 설명했다.

“기존 의류 포장의 방식을 새롭게 바꿨을 때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시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다시 말해 제로백이 친환경적이면서도 사용자의 불편을 해결해 주는 제품이라는 메시지를 부여했죠. 우리 삶을 이롭게 하는 동시에 사용자를 고려한 디자인이 제로백의 가장 중요한 콘셉트였습니다.”

2023년 4월 박경호, 허예진 학생은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제로백’을 전시하고 언론과 다양한 업계 인사들을 통해 현장 반응을 확인했다.

제품의 외형보다
사용자의 경험을
우선하는 디자인

제로백을 어떻게 보완할지가 앞으로 남은 중요한 과제

렉서스 어워드 수상 이후에도 제로백은 여러 발전 과정을 거쳤다. 우선 3개월 간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적인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할 기회를 얻었다.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이자 사운드 아티스트인 유리 스즈키(Yuri Suzuki)의 조언은 제로백 아이디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발판이었다. 허예진 학생은 “처음 제로백을 디자인할 때는 최대한 예쁘게 외형을 디자인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진행했는데, 외형보다 제품을 사용할 이용자 경험에 초점을 두라는 피드백을 받았다”면서 제로백이 사용자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논리적인 제품으로 변모한 계기였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런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다른 분야까지 적용되는 것에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을 바탕으로 베이킹 소다를 활용한 밀키트 포장지와 과일 포장지까지 개발 영역을 확대했다. 제로백 용도의 폭이 넓어진 셈이다. 박경호 학생은 멘토링을 통해 디자인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하게 되었다고 협업의 의의를 평가했다.

박경호 학생과 허예진 학생은 렉서스 어워드 수상을 계기로 지난 4월 세계적인 디자인 위크로 손꼽히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초청됐다. 렉서스는 공모전 선정 작가들을 위한 부스를 따로 마련하여 수상작들을 전시했다. 두 학생은 전시를 통해 여러 마케터, 사업가 등과 교류하며 제로백의 발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현장에서 가장 많이 논의했던 내용은 제로백의 ‘사업 가능성 및 상용화’에 관한 지점이었다. 허예진 학생은 제로백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전시를 보러 온 관계자들에게 설명해야 했는데 아직 외국에는 밀키트의 개념과 문화가 없어 설득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문화 차이를 극복하는 마케팅 전략을 과제로 발견한 셈이다.

또한, 상품화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생활 방수 노출 시 제로백의 내구성, 습기와 곰팡이에 대한 취약성 보완도 고민해야 한다. 두 학생은 이를 보완하고 검증하기 위해 체계적인 테스트와 실험을 거칠 계획이다.

한편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끝으로 제로백의 최종 프로토타입 제작을 마친 두 학생은 다양한 방면의 시도를 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멘토링을 통한 제로백 피드백을 바탕으로 더 많은 산업군에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어떻게 더 정교하고 안전하게 제작할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나아가 제로백의 특허 출원과 생산 업체를 찾아내는 일도 진행하고 있다.

박경호, 허예진 학생이 학생기자에게 제로백의 다양한 응용성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더 나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렉서스 어워드 2023과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두 학생에게 디자이너로서의 역량과 잠재성을 증명한 기회의 장이었다. 박경호 학생은 앞으로도 기회만 있다면 친환경 외의 다른 분야의 디자인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아직 특정 분야를 구체화하지는 않았지만, 사용자의 경험과 논리적인 디자인을 담을 수 있는 어떤 영역이든 제한 없이 시도해 보고 싶어요. 디자이너는 특정 분야의 제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더 나은 가치를 발굴하고 대중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제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허예진 학생도 산업디자인 분야에서 어떤 진로를 선택할지 아직 구체화하지는 않았지만, 본인이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은 분명하다고 답했다.

“대중이 의식적으로 요구하는 사항(Needs)에 대해서도 충족시켜야 하지만,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원하는 것(Wants)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음료를 마실 때 테이크아웃 잔에 립스틱이 묻는다던가, 편하게 마시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사용자를 위한 새로운 테이크아웃 잔을 개발한 어느 디자이너처럼, 사람들의 무의식적 요구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두 학생은 인터뷰를 통해 좋은 디자인이란 단순히 사람들이 미학적으로 예쁘다고 생각하는 요소를 갖춘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경험을 담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의 가치를 뛰어넘어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설득하는 디자인이 대중의 인정을 이끌 것이다. 이를 위해 논리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며 세상에 더 나은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도전을 거듭하는 차세대 디자이너 박경호, 허예진 학생이 있다.

박경호, 허예진 학생은 제로백의 가치를 사회문화 영역에서 다양하게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