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풍자와 해학의 민족이다. 2022년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나라 전통 가면극인 탈춤이 그 증거이다. 탈춤은 신분제라는 보호막 안에 놓인 권력자들의 허세와 위선을 조롱하고, 더 나아가 신분제를 비판하고 평등의 가치를 알리는 ‘흥 넘치는 한판’이다. 과거 탈춤의 주체는 다양했는데 그중 하나가 전문 예인 집단이며, 이들은 오늘날 예능인 정도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요즘 예능인들은 주로 ‘웃기는 것’에 집중하지만, 그들의 기질은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온라인 영상 플랫폼에서는 이른바 ‘21세기 탈춤꾼’들이 벌이는 ‘신명 나는 한판’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모 개그우먼은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 특정 학군을 상징하는 모습을 연출해 영상으로 연재했다. 특정 지역의 학원가, 열혈 도치맘 역할은 많은 이의 반응을 이끌었다. OTT 플랫폼인 쿠팡플레이의 대표 콘텐츠인 ‘SNL 코리아 시즌7’은 유력 정치인들을 패러디한 코너로 인기를 끌고 있다. 코너의 형식은 SNL 크루가 정치인으로 분장한 채 실제 정치인과 마주하는 것이다. 이때, 예능인은 해당 정치인이 대중들로부터 비판받던 태도나 행동을 익살스럽게 묘사하고, 이를 지켜보는 정치인의 반응이 대중의 웃음을 자아낸다. 요즘 말로, 정치인들이 ‘긁히는 모습’은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SNL의 예처럼, 미디어 속 풍자와 해학의 대상은 주로 정치 권력자들이었다. 군사정부 시절에는 강력한 검열을 통해 미디어를 철저히 통제했고, 그로 인해 풍자와 해학의 칼날은 무뎌지기도 했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표현의 자유가 확장되었고, 예능인들은 신랄함으로 무장하여 정치 권력을 거리낌 없이 ‘긁어대기’ 시작했다. 정치인들 또한 이전과는 달리 포용적 태도로 미디어 속 풍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문민정부 초기에 출간된 유머집 ‘YS는 못말려’가 있다. 이 책은 김영삼 대통령을 풍자한 서적으로,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저자인 정덕균 작가는 청와대로부터 ‘나도 재밌게 봤다’는 대통령의 말을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이는 정치 권력이 미디어의 풍자를 포용적으로 받아들인 대표적인 사례이다. 2000년대 이후 온라인 기술이 대중화되며,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정치인에 대한 풍자와 해학이 더욱 확산되며,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책이나 TV, 잡지와 같은 레거시 미디어 속 풍자의 대상은 주로 정치 권력자들이었다면, 온라인 플랫폼이 발달한 지금 시대에는 그 대상이 다변화하였다. 정치권력을 넘어 여러 경제, 사회, 문화적 현상과 그 현상의 중심에 있는 이들이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모 개그우먼이 연기한 ‘강남 도치맘’이다. 개그우먼의 연기가 보여주는 강남 도치맘은 넘쳐나는 돈과 시간으로 자녀를 지극정성으로 관리한다. 보살핀다기보다 ‘관리’한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강남 도치맘의 노력은 자녀에 대한 정서적 보살핌이라기보다, 명문대라는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관리처럼 비친다. 자녀는 모든 게 계획에 따라 철저히 관리되고, 이를 통한 성과는 곧 부모의 성과가 된다. 이 과정에 경제적 기반은 필수적 요소다. 부모의 재력은 자녀를 수많은 사교육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고, 학습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실현한다. 모 개그우먼은 차량, 의상, 외모, 말투 등으로 강남 도치맘의 ‘부의 상징성’을 표현했다. 샤넬 가방과 에르메스 목걸이, 몽클레르패딩 등 명품으로 치장한 강남 도치맘의 ‘부티’는 마침내 1억 4천만 원짜리 자동차 포르쉐 카이엔에 오르며 절정에 이른다.
전통적인 풍자와 해학은 정치 권력을 견제하는 사회적장치로 기능해왔다. 정치 권력에 대한 비판적 담론은 권력자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대중들에게는 공론의 장을 제공했다. 대중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풍자와 해학이 담고 있는 속뜻을 이해하며 함께 고민했다. 그리고 정치 권력을 향한 ‘시민의 힘’은 여러 차례 발현되었고, 우리 사회는 느리지만 단단한 발걸음으로 민주사회를 실현해왔다. 한국 사회가 경제적 부를 축적하며 그 부가 권력화되는 현시점에서, 강남 도치맘의 등장은 커져가는 경제 권력이 만들어 낸 사회적 문제를 ‘신명 나는 한판’ 위에서 자유롭게 논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질문이 하나 있다. 이 기회를 그냥 둘 것인가, 아니면 이 기회를 제대로 살려 볼 것인가?
긁힐 때 우는 자는 삼류이고,
웃는 자는 이류이며,
고민하는 자가 일류이다.
모 개그우먼의 실감나는 연기로 ‘긁힌’ 수많은 강남 맘들도 울고만 있지 말자. 긁히는 모습을 보던 이들 역시 웃고만 있지 말자. 경제적 부의 집중화, 사치와 과시, 교육 기회의 불평등, 학벌 중심 사회, 자녀 도구화, 사교육 과열 등 강남 도치맘이 던진 수많은 담론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야 한다.
고민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문제의식에서 멈춰서는 안된다. 그 문제를 제대로 해석하고, 해결책을 논의하며, 사회적 행동으로 연결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짤이나 밈, 숏폼 형태로 쏟아지는 수많은 풍자 속에 숨어있는 사회적 문제를 포착하고 받아들이는 능력과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먼저 필요한 것은 능력이다. 커뮤니케이션학에서 이를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라 한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단순히 정보를 수용하는 것을 넘어,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미디어 속 숨은 뜻을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강남 도치맘이 던진 메시지를 단순히 웃고 넘기는 것은, 표면적 텍스트에 머무르는 것이다. 풍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익살스러운 표현 뒤에 다양한 상징과 체계를 내포한다.
이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필수적이다. 강남 도치맘의 명품 가방과 포르쉐 자동차는 특정 지역에 사는 이들에게 집중된 부와 사회적 계층 간의 간극을 의미한다. 하루 온전한 시간을 자녀 교육에 할애하는 모습은 교육 환경의 불평등과 학벌 중심 사회를 의미한다. 이러한 상징과 체계를 해석할 힘이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이다. 단,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갖추는 순간, 풍자와 해학은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 우리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스릴러 장르’가, 때로는 현실의 불합리를 직시하게 만드는 ‘부조리극’처럼 여겨질 수 있다. 유의하기를 바란다.
다음으로 마음가짐이다. 예능인들의 ‘신명 나는 한판’에 대한 포용적 자세도 필요하다. 2000년대 중반 KBS 개그콘서트의 대표 코너인 ‘청년백서’는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하지 말자!”라며 클로징 멘트를 외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은 단순한 마무리 멘트가 아니었다. 개그가 현실의 문제를 익살스럽게 풍자하고, 때로는 과장된 표현으로 비틀 때, “너희가 뭔데 이런 개그를 쳐? 그냥 사람들 웃기기나 해”라며 따져 드는 이들에 대한 애교 섞인 외침이 아니었을까? 이는 우리 사회가 예능인의 풍자를 ‘골치 아픈 일’ 혹은 ‘주제 넘는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예능인들은 사회적 문제를 누구보다 빠르게 감지하고, 유머라는 장치로 이를 해부하며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코미디로 승화한 것들은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사회적 문제라 인식하고 포용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전통 사회의 탈춤이 그랬듯, 2025년 오늘날 예능인의 신명 나는 한판 역시 우리 사회의 모순을 비추는 강력한 무대이다. 강남 도치맘이 던진 질문들은 단순한 웃음이 아닌, 현실의 단면을 과감히 드러낸다. 이제, 우리는 그 질문을 외면하지 말고, 깊이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