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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산업 응용이 가능함을 증명한 양자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가 열린다. 올해에도 1월 7일부터 10일까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가전제품 위주의 전시로 1967년 뉴욕에서 시작된 CES는 시카고, 필라델피아, 올랜도 등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개최되었고, 1998년부터 1년에 한 번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런 전시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생활양식을 바꾸어 왔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혁신적인 기술의 소유 여부에 따라 국가의 앞날이 좌우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CES의 주관사는 CTA(미국 소비자 기술협회)이다. 미국 소비자 기술협회라는 명칭처럼 CES는 2010년까지 제품 위주의 전시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제품을 소개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2010년 중반부터 그 포맷을 제품에서 기술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가장 앞서가는 테크놀로지의 모습을 제공하는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에 걸맞게 올해 CES에서는 미래의 기술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세 가지 프로그램이 신설되었다. 그중 하나는 ‘양자(Quantum)’였다. 양자물리가 연구실에서 뛰쳐나와 산업적인 기술로의 전환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답변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 오랜 기간 많은 전문가들은 양자 시스템의 직접적인 산업 응용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양자 시스템이 가지는 기본적인 특성인 중첩(Superposition)과 얽힘(Entanglement) 같은 성질을 이용하는 것이 용이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양자물리의 부산물인 반도체 산업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산업적 응용을 위해 양자 물리 자체를 이용하는 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양자 시스템 자체를 통해 산업적 응용을 이루어 내는 것은 요원해 보이는 일처럼 여겨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이후 양자정보이론에서의 급격한 진보는 이러한 부정적인 견해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데 성공해 왔다. 그 첫 번째로 등장한 것이 양자키분배(Quantum Key Distribution, QKD)이다. 가장 안전한 암호는 송신자와 수신자가 공유하는 비밀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송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비밀키를 안전하게 공유하는 방법이었다. 1984년 베넷과 브라사드는 양자물리를 이용하여 비밀키를 공유하는 방식을 최초로 제안하였다. 이들이 발표한 방식은 BB84 프로토콜이라 불린다.

현재는 이를 보안면에서 더욱 개량한 프로토콜들을 산업화하는 과정 중에 있다.

양자물리에서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가 어려운 성질이 많이 등장한다. 그중 하나가 양자복제불가정리(No cloning theorem)이다. 고전적인 정보는 모두 복사가 가능하다. 그러나 양자복제불가정리에 의하면 임의의 양자상태는 복제 또는 복사가 불가능하다.

이 정리는 양자키분배방식으로 공유된 비밀키가 근본적으로 안전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양자키분배는 현재 모든 선진국이 그 중요성 때문에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야 중 하나이다. 특히 광섬유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자유공간(Free space)에서 양자키분배시스템의 구축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연구자 중의 하나는 저자의 연구실 출신인 캐나다 국립연구소의 진정완 박사이다. 그는 자유공간에서의 양자키분배 시스템을 구축한 최초의 연구자 중 하나이다. 현재는 양자 인터넷 관련 연구를 수행하며 세계적 연구 결과들을 발표하고 있다.

양자통신과 더불어 주목받는 또 다른 분야는 양자계측이다. 지금까지는 어려웠던 계측이 양자물리의 성질을 이용하면 가능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고전적인 방식에서 측정의 한계가 양자물리를 통해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스텔스전투기를 탐지하는 것은 지금의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양자물리를 이용한 계측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이런 이유로 산업적 응용에서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응용을 위해 양자계측기술연구가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세상의 변혁을 불러올 양자컴퓨터, 그리고 연구자들

현재 양자 분야에서 가장 큰 이슈는 양자컴퓨터이다. 양자컴퓨터와 관련하여 이번 CES 기간 중 엄청난 해프닝이 있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그 논란의 중심이었다. 그는 기조연설 중에 양자컴퓨터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하여 양자컴퓨터 관련 주식들을 하루 만에 반토막 나게 하였다. 그는 자신의 연설에서 양자컴퓨터가 실제적인 모습으로 산업현장에 활용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양자컴퓨터 관련한 전문가들과 빌 게이츠 등이 젠슨 황의 발언을 반박하였고 젠슨 황은 자신의 표현을 수정하는 모습으로 뒷걸음쳤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양자물리는 중첩(Superposition)과 얽힘(Entanglement) 등의 독특한 성질을 지닌다. 이러한 성질들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양자컴퓨터를 구현하기 위해 국가 간, 초일류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왜냐하면 양자컴퓨터는 고전컴퓨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계산능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양자컴퓨터 플랫폼으로는 다양한 방식들이 논의되고 있다. 이 중 가장 앞서고 있는 플랫폼은 초전도 기반 양자컴퓨터이다. 현존하는 슈퍼컴퓨터(고전컴퓨터)보다 양자컴퓨터의 성능이 우위에 있을 때 이를 양자우위(Quantum supremacy)라고 부른다.

2024년 12월 구글은 윌로우라는 초전도 기반 양자컴퓨터를 통해 슈퍼컴퓨터가 10조 년 걸릴 계산을 5분 만에 해결했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발표에도 불구하고 양자컴퓨터의 실제적 도래에 의심의 눈초리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양자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양자물리의 특성들이 잘 유지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양자물리의 특성들은 디코헤런스(Decoherence)라고 불리는 현상에 의해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다. 젠슨 황의 지적은 디코헤런스 문제를 포함하여 양자컴퓨터의 오류 문제 해결을 위해선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쓸만한 양자컴퓨터를 만들 때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디코헤런스를 포함하는 오류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주요 기술은 오류를 최소로 하는 양자게이트를 구성하는 기술과 하드웨어 동작 시 등장하는 오류들을 정정하는 기술 등이다. 작년 12월 구글은 자신들의 초전도 기반 양자컴퓨터에서 이 디코헤런스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음을 보였다. 또한 저자의 연구팀에서도 IBM의 양자컴퓨터 시스템에서 이 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새로운 하드웨어를 제안하였다.

양자컴퓨터의 도래는 세상을 다른 모습으로 바꿀 것이다. 1994년 벨연구소에 근무하였던 쇼어(Shor)가 발표한 양자소인수분해 알고리즘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왜냐하면 이 알고리즘의 실현은 현재에도 은행 간 거래에서 사용되는 RSA 암호체계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음 해에는 일방적 해시함수를 이용하는 고전적 암호화방식에 심각한 위협을 제공하는 양자데이터베이스 탐색 알고리즘이 그로버(Grover)에 의해 발표되었다. 결국 쓸만한 양자컴퓨터의 등장은 현재 사용 중인 보안 체계 전반에서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양자컴퓨터의 등장은 보안 체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고전컴퓨터와의 비교 불가능한 양자컴퓨터의 계산 성능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양자컴퓨터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새로운 인공지능 방식은 신약 개발이나 배터리 소재 개발 등 새로운 산업을 열게 할 해법들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양자컴퓨터로 말미암아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펼쳐지는 한가운데에서 본 교수 연구실 출신들이 세계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미 세계적인 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카이스트의 배준우 교수를 비롯하여 앞에서 언급한 캐나다 국립연구소의 진정완 박사 그리고 양자계측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KIST 남궁민 박사, 양자상태 구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는 경희대 하동훈 박사가 그들이다. 이뿐만 아니라 본 연구실에서 학위 과정 중에 있는 여러 대학원생들 또한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결과들을 발표하고 있다. 양자물리를 통해 세상이 바뀌어 가는 한복판에 우리 모두가 살고 있다. 이 놀라운 발전에 기여하는 한양대 ERICA 출신들의 활약을 더욱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