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SNS로 다양한 공간을 소개하는 ‘홍익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문형근 동문은 12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건축·공간 인플루언서다. 2022년 10월 「인증샷 바깥의 공간」이라는 책도 출간했다. 대중과 함께 공간을 읽으며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문형근 동문을 만나 공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문형근 동문은 자신을 ‘건축가’, ‘건축디자이너’라는 말 대신 ‘공간가’라고 소개했다. 단순히 건축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빈 곳이라는 의미의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이이기 때문이다.
“제가 학교에서 배운 건축이라는 것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공간적 시스템을 짜는 일입니다. 그런데 건축은 세울 ‘건(建)’에 쌓을 ‘축(築)’, 즉, ‘컨스트럭션(construction)’이죠. 그것은 제가 배운 개념이 아닙니다. 제가 배운 것은 그 비어있는 사이의 공간을 생각하는 힘이에요. 그렇다면 공간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것이니 그에 맞게 공간가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아직은 건축가라 부르는 이들이 더 많지만, 공간가라고 불러주는 이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최근 사회적으로 공간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으니 언젠가 정말 공간가라는 직함을 사용하는 이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문형근 동문은 ‘1호 공간가’가 되는 셈이다. 문형근 동문이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게 된 것은 대학 3, 4학년 때부터다. 그러다 3년 뒤 ‘홍익 공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대중이 보다 높은 수준의 공간을 요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도면대로 정확히 시공하지 않거나 재료의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등 시공 품질이 좋지 않은 건축물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딘가 불편해 다시 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죠.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 이유를 정확하게 끄집어내지는 못합니다. 기본적으로 좋은 공간을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좋은 공간이 무엇인지 목소리를 낼 수 있으려면 공간가나 건축가들의 의견을 들으며 공간에 대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를 바랐습니다.”
문형근 동문이 대중에게 공간을 읽어주는 일을 자처하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좋은_공간을_널리_이롭게’라는 해시태그를 붙이고 시작한 홍익 공간 프로젝트는 8년 넘게 이어졌다. 그동안 수천 곳의 공간을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했다. SNS에 넘쳐나는 것이 화려한 이미지의 ‘핫플레이스’ 게시물이다. 아무리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지만 공간가의 설명을 들으려는 이들이 있을까. 문형근 동문이 운영하는 계정은 팔로워 수가 10만 명이 넘는다. 좋은 공간에 대한 일반인들의 열망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문형근 동문은 말 그대로 크리에이터가 됐다.
“그동안 공간을 읽는 방법을 하나씩 배운 독자들의 눈이 이제 제법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꽤 날카로운 질문들을 하세요. 질문의 수준이 높아져 답변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있어 고민입니다.”
반가운 고민을 하고 있는 문형근 동문의 프로젝트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듯하다. 시기를 잘 탄 점도 있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행할 때는 전국적으로 카페가 우후죽순 생기며 카페 춘추전국시대라 불리던 때였다. 그러면서 대중 사이에는 카페 문화라는 것이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카페 문화를 이끌던 사람들은 20살 초중반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그 세대들은 본인 명의의 집을 갖기 힘들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의 카페에서 대리 만족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다양한 인테리어의 카페를 접하며 서서히 자신의 취향을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이제 취향이 확고해진 분들은 취향에 맞는 공간만 찾아다닙니다. 취향이 고도화되기 시작한 것이죠.”
공간을 읽어주는 문형근 동문은 대중이 찾는 공간에서 이렇게 시대를 읽는다. 이러한 시각을 정리해 다양한 매체에 공간에 대한 칼럼도 쓰고 있다.
공간의 가치를 아는 것이
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첫걸음
현재 문형근 동문의 본업은 ‘제네스’라는 건축설계·시행사에서 브랜딩과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토지 매입부터 건축 설계, 브랜딩·마케팅, 인테리어 등 전 분야에 걸쳐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곳인데, 함께 일하는 6명 모두 건축과 선배들이다.
“개인이 사는 단독주택이라도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에 맞게 브랜딩을 하고, 그에 맞게 공간을 설계했을 때 공간의 경험이 배가 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마침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선배들을 만나 의기투합하게 됐습니다.”
문형근 동문은 좋은 공간을 찾아다니기만 하지 않고 실제 좋은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좋은 공간이란 어떤 공간일까. 이에 대해 문형근 동문은 “자신만의 취향이 가득한 공간”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이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건축물의 브랜딩 작업 전에 고객의 취향을 잘 담기 위해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렇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취향을 묻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자연스럽게 고객의 취향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러한 취향을 기반으로 어떠한 공간을 구성할 것인지 A4 4페이지 분량의 에세이 형태로 정리해 전달하는 것이 그의 작업 방식이다.
“한 고객이 부모님이 사실 단독주택을 의뢰했는데, 부모님의 취향을 담을 수 있는 화이트 큐브라는 보석함을 콘셉트로 취향이 도드라질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해 드렸죠. 이름은 ‘취향백함’이라고 지었습니다. 현재 완공 후 조경작업 중인데 고객도 만족해하십니다.”
좋은 공간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 문형근 동문이 9살 때 막연히 공간가를 꿈꾸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당시 집을 고쳐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였는데, 새집을 선물 받은 사람들이 웃을 줄 알았는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에게 좋은 공간을 지어주는 일은 그렇게 기쁜 일인가 보다는 생각에 자신도 그러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다. 그래서 문형근 동문에게 공간가는 그 자체가 꿈이라기보다 꿈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제 꿈은 기회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공간으로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 꿈을 이루는 도구로 공간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죠. 이 세상은 시간과 공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과거나 미래로 갈 수 없죠. 하지만 공간은 다룰 수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몸을 가지고 있으니 공간에 존재해야 합니다. 공간을 잘 알면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공간의 가치를 아는 것이 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간 하나쯤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