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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바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

푸른 바다를 마주하고 있어 관람 중 실제 바다를 볼 수 있는 국립해양박물관은 6개의 전시실과 해양도서관, 수족관, 4D 영상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김윤아 동문은 2012년 국립해양박물관이 개관한 이래 학술연구팀, 유물관리팀, 전시기획팀을 넘나들며 해양 유물 확보 및 보존에 앞장섰다. 그리고 이러한 소중한 유물을 일반인들에게 소개하고자 지난 10여 년 동안 다양한 전시를 기획해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의 영예를 안았다.

국립해양박물관은 국내 첫 해양박물관으로, 해양수산부와 부산시의 숙원이었다. 그런 만큼 5천 년 한반도의 해양 문화를 바탕으로 역사, 과학, 생물, 인물, 산업 등을 총망라하다 보니 세계 최초의 종합 해양박물관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 해사(선박)박물관, 해양자연사박물관, 해양아쿠아리움처럼 분야별로 세분화돼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만 보았던 해양박물관이 우리나라에도 생긴다는 기쁨에 개관 1년 전부터 열의를 다해 국립해양박물관건립추진기획단에 참여한 김윤아 동문.

“학예연구사에게 국립박물관의 개관 작업에 참여하는 것은 흔히 있는 기회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시 여수 세계엑스포 개최에 맞춰 개관일을 앞당기는 바람에 50일 만에 개관 준비를 마쳐야 했죠. 보통은 준공 후 시험 가동 및 정식 개관까지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거든요. 박물관 옆에 숙소를 마련하고 새벽 2~3시까지 일했죠. 한양대 박물관 개관 준비에 참여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개관 당시 해양 문화, 해양 역사, 해양 과학, 해양 생물, 해양 산업과 관련된 장비, 용품, 물품, 도서, 예술품 등 해양 유물을 모으기 위해 범시민적인 수집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이의 염원으로 문을 연 국립해양박물관은 실물의 2분의 1 크기로 복원한 ‘조선통신사선’을 비롯해, 1846년 영국에서 제작해 동해를 한국해(GULF OF COREA)라고 표기한 ‘지구의와 천체의 세트’, 1646년 영국에서 만든 세계 최초의 해도첩 ‘바다의 신비’, 1837년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 땅으로 인정한 ‘죽도제찰’ 등을 전시하며 첫 관람객을 맞았다.

10년 동안 25회 넘는 전시 기획

“개관 후 국내외 여러 기관과 협업해 일 년에 네 차례 정도 전시를 개최했습니다. 예를 들면 노르웨이 대사관과 공동으로 ‘한국-노르웨이, 남극과 북극의 만남’이라는 전시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국내 최초로 노르웨이의 극지 탐험가 난센의 난민여권과 첫 번째 탐험 때 사용한 스키, 그리고 아문센의 카메라, 부츠를 전시했죠. 그리고 노르웨이 해양연구기관이 촬영한 해양쓰레기 사진들을 전시한 ‘북극 해양쓰레기 사진전’도 의미 있는 기획이었습니다.”

국립해양박물관에서 일하며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은 해군에서 폐기하려던 ‘돌고래급 잠수정’을 인수한 일이다. 돌고래급 잠수정은 최초의 국산 기술로 제작한 잠수정으로, 국내 해양 안보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다. 지금도 박물관의 자랑스러운 유물로 야외전시장에 전시돼 있다. 이렇게 해양 유물의 발굴, 보존, 연구, 전시, 교육 및 국내외 해양기관과 교류하며 해양 문화를 창달하고자 달려온 시간 속에 국립해양박물관은 지난해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누적 관람객 수는 1천만 명이 넘었고, 개관 당시 5명이었던 학예연구사는 36명으로, 15,000점의 유물은 28,000점으로 늘었다. 그리고 김윤아 동문은 박물관에서 가장 오래 일한 학예연구사가 됐다.

“벌써 10년이라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난해에는 박물관의 10주년과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며 ‘한중 해양문명의 교류’라는 전시를 개최했습니다. 당시 한중 관계가 좋지 않아 유물을 대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뜻깊은 전시였습니다.”

원하는 분야에서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경험하며 도전하길

박물관인의 밑거름 된 한양대 박물관 시절

학예연구사의 일이 도드라지게 빛나는 일은 아니지만 역사의 흔적을 지키고 전승한다는 자부심으로 묵묵히 이 길을 걸어왔다는 김윤아 동문. 학예연구사의 길로 접어든 것은 문화인류학과에 입학한 후 고고학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다.

“고고학은 ‘인디애나 존스’ 같은 외국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저와 먼 얘기였죠. 그런데 입학하고 보니 우리나라에도 고고학이란 학문이 있고 발굴 작업도 하고, 게다가 교수님이 무려 한국고고학회 학회장이셨죠. 너무 좋아서 대학 4년 내내 고고학연구반에서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사실 삽질과 호미질이 발굴 작업의 99%라 할 수 있지만 운 좋게 몇백 년 전 유물을 찾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경기도 하남시의 이성산성 발굴 작업에 참여했을 당시, 통일신라시대 사용했던 ‘요고’라는 악기를 발굴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양대 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문화재 발굴 조사, 유물관리, 국제 컨퍼런스 및 전시 등을 진행하며 국제적 안목을 기르고 박물관인의 기본기를 다질 수 있었다. 지금도 한양대 박물관으로부터 유물을 대여하고 자료협조를 구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양대 및 한양대 박물관에서의 경험이 박물관인생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김윤아 동문은 후배들에게도 지금의 시간을 알차게 경험해 보기를 권했다.

“많은 경험과 도전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어디든 쉬운 길은 없겠지만 정보가 흘러넘치는 시대이니만큼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그에 대해 많은 경험과 도전을 하면 큰 기회로 돌아올 수 있고, 또 든든한 토대가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국립해양박물관에는 새로운 역할이 부여된다. 그동안 선박, 등대, 독도, 해양 과학, 해양 자연사 등 해양 문화의 세부 주제에 특화한 박물관들이 전국 곳곳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년에 해양수산부에서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을 개관하고, 전남 완도에 국립해양수산박물관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이에 국립해양박물관은 중앙 해양박물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김윤아 동문도 국립해양박물관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해양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힘을 보탤 것이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바다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의외로 바다를 잘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바다를 멀리하고 섬들을 비우는 공도 정책을 써 공백기가 있었죠. 유럽의 대항해 시대에서 보듯이 세계사는 해양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조선업 등 산업이나 기후 위기 같은 환경적인 면에서도 바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해졌죠. 역사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이제 미래를 위해서도 바다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해양에 대한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할 테니 많은 관람객이 국립해양박물관을 찾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젊은 박물관인, 김윤아 동문의 바람이다.